판사 사찰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입바른 판사는 늘 사찰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도 국가안전기획부의 사찰을 당한 적이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쓴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1984년 10월 5일자 ‘시위학생 즉심, 형 면제 선고자 남부지원 강금실 판사 성향 등 내사보고’에 따르면 안기부는 ‘강금실 남부지원 판사가 1984년 9월 22일부터 같은 달 28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남부 즉결심판소에 회부된 서울대생에게 형 면제 선고를 했다’며 그 경위를 내사했다.


안기부는 강 판사의 친정과 시댁 가족관계와 부친의 재산사항까지 샅샅이 뒤졌다. 안기부는 과거 ‘무림사건(1980년 말에 발생한 서울대 학회들의 지하모임 사건)’으로 복역한 그의 남편 김모씨에 주목했다. 강 판사가 시위 학생들에게 형 면제를 선고한 것이 남편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강 판사의 고교·대학·사법시험 동기인 김영란 판사(향후 대법관) 주변을 탐문해 강 판사와 김씨의 결혼 경위까지 파악했다.“


30여년이 지난 지났지만 판사들에 대한 사찰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월이 지나 사찰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차모 전주지법 판사는 2015년 8월 법원 내부게시판에 ‘사실심 충실화 관련 판사 수 대폭 증원과 상고제한 추진 의견’이라는 글을 올렸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상고법원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글이었다. 이 글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법원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차 판사의 주변 판사들을 탐문하고 그가 보낸 이메일을 입수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기록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의 경력, 특정 단체와 가까운지 여부, 대학 재학 당시 학생회, 법대 동아리에서 활동했는지 여부 등도 조사했다. 이들은 차 판사에 대해 ‘대학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중 학내 성폭력 문제 등의 사안에 대하여 장문의 대자보를 쓰면서 논쟁을 하는 활동을 함. 비주류 활동가 성향’이라고 적었다.


법원은 차 판사의 재산도 샅샅이 뒤졌다. 법원행정처는 2016년 4월 윤리감사관실을 통해 차 판사가 2009년 법관으로 임관한 이후 재산변동 내역에 대하여 검토했다. 차 판사의 사인간 채무에 대해 2014년 기준 신고 당시 차 판사가 제출한 소명자료를 들여다본 것이다. 연도별 재산 총액에 관한 그래프까지 첨부해 상사에게 보고했다. 사찰이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차 판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판사를 오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사찰 의혹을 ‘셀프 조사’한 대법원마저 임 차장의 해명에 대해 “믿기 어렵다”며 “차 판사에 대한 뒷조사 차원에서 재산관계를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보임”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임 차장이 당시 사법부 최고결정권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이러한 법관 사찰을 지시받았는지 등 핵심적 의혹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못했다. 조사단 차원의 수사의뢰도 없었다. 누군가가 판사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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