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정치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국민은 4년마다 꿈을 꾼다. 삼바 축구가 월드컵을 제패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브라질은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빠짐없이 본선에 진출한 유일한 나라다. 1958·1962·1970· 1994·2002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른 통산 5회 우승국임에도 여전히 우승이 고프다.


2002 한일 월드컵 우승 이후 8강에 두 번(2006·2010) 오른 데 그친 브라질은 1950년 이후 64년 만에 자국에서 개최한 2014 월드컵에서 우승을 노렸으나 4강전에서 독일에 1-7로 충격의 참패를 당했다. 브라질 국민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졌고, 그 후유증은 한참 동안 계속됐다. 브라질이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단단히 벼르는 이유다.


브라질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삶의 활력소이자 힐링이며, 가난한 청소년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다. 월드컵이나 국내 프로리그에서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빈민가에서 총격전도 멈춘다.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월드컵은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축구스타 출신 연방상원의원인 호마리우는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배고픈 국민에게 음식을 제공하듯 월드컵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의 미국 월드컵 우승은 10년 가까이 계속된 경기침체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호마리우가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길을 걷는 데 축구가 밑거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부패혐의로 수감된 룰라 전 대통령의 심리적 안정과 지지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프로축구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감방에 TV를 설치해 줬다는 사실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축구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1956~1961년 집권한 주셀리누 쿠비셰키 전 대통령은 브라질이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대표팀 선수들 사진이 담긴 스티커를 정책 홍보와 대국민 설득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축구의 정치 도구화에 선례를 남겼다. 쿠비셰키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앞세워 강력한 국가발전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지금까지도 ‘JK’라는 애칭으로 국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데는 축구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축구황제’ 펠레는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전 대통령 정부(1995~2002년)에서 체육부장관을 지냈다. 카르도주 정부의 첫 각료회의는 펠레의 장관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카르도주 전 대통령은 펠레를 각별하게 예우했다. 재무장관은 국영기업 민영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고, 외교장관은 대외정책에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펠레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룰라 전 대통령은 2003~2010년 집권 기간에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축구클럽 선수들을 수시로 대통령궁으로 초청해 많은 화제를 뿌렸다.


브라질에서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1980년대 중반에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대선이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치러진다는 점도 묘한 인연이다. 언제부턴가 월드컵 성적은 대선에서 주요 변수의 하나가 됐다. 투표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이 룰라의 대중적 인기에 불을 붙이면서 그 해 대선 승리를 견인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면 10월 대선 정국이 본격화한다. 대형 부패 스캔들과 대통령 탄핵, 사상 최악의 경제침체 등 온갖 악재를 거치면서 치러지는 올해 대선을 놓고 어떤 전문가도 결과를 쉽게 점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룰라 전 대통령이 비교적 큰 격차로 다른 대선주자들에 앞서 있다. 대선에 출마하기만 하면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른다. 그러나 부패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실 때문에 끝내 그의 출마가 좌절되면 어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어지러운 판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룰라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최대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데서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야 움직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느 후보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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