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언론 활용 문건 공개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 중 2015년 8월20일 작성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이 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대법원 조사단)이 지난 5일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찾아 공개한 98개 문건 중 하나다. 이 문건에는 “주요 언론 활용한 압박 분위기 조성”을 위해 “법무부에 실질적 영향 미치고, BH(청와대) 인식 환기시킬 수 있는 메이저 언론사 활용→조선일보 1면 기사 등”이라고 적혀 있다.


이 내용의 문건은 8월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임명 제청을 위해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난 이후 작성됐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 필요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 전 대통령은 “법무부와 협의하여 창조적 대안을 창출해주기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에서 “CJ(양승태)와 VIP(박 전 대통령) 면담으로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도래했다”며 법무부를 협상 테이블로 유인하는 데 언론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구체적 활용 방안으로 △8월 중 기고문이나 사설 게재 △9월 중 대국민 설문조사 실시하여 결과 공표 △중량급 법조인 등 참여하는 지상 좌담회 개최 등을 거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주요 사건 재판을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하고,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 등을 파악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 조사단은 “문건이 실행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재판거래 의혹만으로도 사법부 독립과 재판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개탄이 나온다. 11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형사 절차를 포함하는 진상조사와 책임 추궁”을 결의했고, 전국의 2000여명 변호사들은 검찰 수사와 관련자 고발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성사와 비판적인 판사들을 배제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 외에도 언론 활용 모의는 별도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2016년 3월 작성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에선 “보수 성향 언론사에 정보 제공, 인사모(인권법연구회 소모임) 비판기사 내는 방안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대법원이 언론을 통해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니 믿기지 않을뿐더러 사법부 입맛대로 언론을 조종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인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특히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문건 제목에 ‘조선일보’가 들어간 문건 10개가 포함돼 있다. 2015년 1월부터 9월까지 생산한 문건들로 ‘조선일보 상고법원 기고문’ ‘조선일보 첩보 보고’, ‘조선일보 홍보전략’, ‘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 ‘조선일보 방문 설명자료’, ‘조선일보 보도 요청사항’ 등이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화를 위해 청와대와 국회를 가리지 않고 입체적으로 대응 전략을 추진하던 시점이라 조선일보와 커넥션을 맺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문건들이 실제 실행됐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런 시도가 있었다면 ‘법언유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과 법원의 거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감춘다고 감춰질 사안이 결코 아니다. 해당 언론사의 명예를 위해서도, 언론을 활용한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서도 언론 관련 문건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다”며 공개를 미루며 뭉개고 있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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