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판결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생을 왔다 갔다 하게 했는지…판결이 잘 났으면 지금 복직해서 3년째 일하고 있었을 거고, 돌아가시는 분도 없었을 거고요. 지금 이렇게 천막을 치고 있지도 않았을 거고요.”
지난달 25일 밤, 설핏 잠들었다가 새벽에 보게 된 기사. ‘KTX승무원’이란 단어 하나에 눈이 멎었다. 전혜원<사진> 시사IN 기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고 했다. 승무원들은 하루 전인 24일 서울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 참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이란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 흥정을 시도했다는 기사 속에 ‘덜렁’ 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홀로’ 버텨온 시간. 2013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가장 먼저’ 혹은 ‘가장 오래’는 아닐지언정 최근 1~2년 새 ‘가장 꾸준히’, ‘가장 가까이서’ KTX승무원들을 지켜본 기자 중 하나다.
“지난해 대선 기간 스토리펀딩을 제안 받아 처음 뵀어요. 열 몇 분 정도를 인터뷰 했고…‘재판거래’를 여쭤보니까 그럴 줄 알았대요. ‘이 나라가 어디부터 잘못된 거냐’, ‘정치적 판결이란 의심은 들었지만 막상 문건이 나오니 실감이 안 난다’는 분도 있고요…국가기관에 두 번 배신당한 거죠.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들어갔는데 취업사기 형태로 당했고, 마지막으로 기댄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시도한 건 사실이니까요.”
2015년 대법원은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1·2심 원고 승소 결정을 뒤집었다. 어쩌면 시도에 그치지 않았을,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은 34명의 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판결 직후 한 해고 승무원은 절망감과 빚 부담에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세 살이던 고인의 딸은 여섯 살이 돼 어린이집에 다닌다. 멋모르던 아이는 이제야 엄마를 찾는다. 남겨진 33인은 패소 후에도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모든 게 순탄해서가 아니다. 절반은 가정주부고, 나머지 중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투쟁 4000일을 맞은 지난 2월 자체 조사결과 월수입이 아예 없거나 100만원 이하인 비율이 64%에 달했다. 가족의 반대, 아이양육, 가계 재정 어려움 속에서 아이 손에 장난감을 들리고, 유모차를 끌어 매주 서울·부산역에서 피켓시위를 한다. 지난 18일엔 정복을 입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투쟁을 했다.
“코레일과 정부 결단이 시급한 거 같아요. 싸운 게 12년이에요. KTX문제는 하급심 판결에, 돌아가신 분도 있고, 대법원 문건도 있어서 전체 비정규직 정규화랑은 다르게 볼 사회적 정당성이 있지 않나요. 꽁으로 정규직 되려고 그러냐는 댓글도 있는데 시험봐서 입사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거거든요. 공정하게 논하려면 선이 그어지기 전을 봐야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판결은 34인 개개인의 생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엄정했을까. 먼저간 이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우리 아들딸이 살 세상을 위한 변화도 지금-여기 남은 이들의 몫이다. 입사 이래 줄곧 노동문제에 관심 가져온 정 기자는 이 말을 당부했다. “이분들은 남겨진 아이를 위해 뭔가 말해줄 수 있었으면 해서 싸우는 거예요. 엄마 죽음이 헛되지 않았고, 의미 있는 일을 했고, 그래서 싸우는…노동문제 핵심에 있기도 하고 거리감이 무너졌다고 느껴지는 사건이기도 한데 잘 치유되는 모습까지 보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