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공영방송 이사 선임 손 떼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EBS 이사진이 8월과 9월에 교체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밑거름으로 탄생한 정부다. 따라서 이번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 큰 관심사다. 새 이사들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시민들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다.


많은 언론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유는 대통령-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로 이어지는 강고한 연결고리 때문이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임명이나 추천 권한이 있지만, 지금까지는 정부의 성향과 정치권의 구도를 반영한 인사를 앉히는 들러리를 서는 데 그쳤다. 정권 코드에 맞춰 방송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야당은 이를 언론장악이라며 비판하는 악순환이 거듭된 이유는 방통위의 이런 책임방기에 기인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할 때 여야의 합의를 유도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마련됐고 국회에 보내졌다. 하지만 방송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여권이나 잠재적 전리품으로 여기는 야권 모두 법안통과 의지가 없어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번 이사 선임 역시 현행 방송법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 확실하다.


여당 인사가 대다수를 차지하도록 한 현행 방송법에 따른 이사 선임 방식은 단순히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약화 가능성이라는 문제만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참여라는 시대 정신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반면 정치권은 오히려 법적 근거도 없었던 여당과 야당의 이사 추천권을 명문화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는 정치권이 자리 나눠 먹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방송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방송 독립성 확보에 별 관심이 없음을 방증한다.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임명에 시민들의 검증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장해 온 언론시민단체의 목소리는 경청할 만하다. 지난 21일 발족한 ‘방송독립 시민행동’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를 축소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검증단’ 도입을 핵심으로 한 이사선임 개선안을 방통위에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방통위의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는 시민검증단에게 공개적으로 정책을 설명하고, 검증단은 심사를 통해 후보자를 1.5배수로 압축해 방통위에 제출하도록 했다. 새 정권 들어 원전 공론화 위원회나 KBS 사장선임 때 시도된 방식으로 이를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적용해보는 것은 유의미한 시도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여기에 이사 후보자의 이력, 추천인과 추천단체, 지원서 등 정보를 공개해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모두 오래 전부터 언론시민단체가 요구했던 사안이다.


누구를 뽑는지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함으로 ‘깜깜이 이사’ 의 폐해를 막는 일 역시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방송의 자유와 공익성을 보장한다는 공영방송 이사의 엄중한 책무를 망각하고 사적으로 법인카드를 쓰거나 막말을 일삼는 수준 미달의 이사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는 점에서 이 제안의 수용 여부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혁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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