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을 의미하는 ‘워라밸’ 트렌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는 물론 노동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듯하다. ‘워라밸’은 노동자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하나의 운동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조직의 권력자의 뜻에 따라 결정돼왔던 노동의 형태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언론에도 불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사에서 ‘하리꼬미 폐지’를 선제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연합뉴스는 이달부터 하리꼬미를 없애고 수습기자들을 정치부와 통일외교부, 국제부 등 회사 주요 부서를 순환 배치해 실무를 배우도록 했다. 또 연합뉴스TV와 사진부 등도 경험하도록 했다. KBS도 지난 4월 수습기자들을 낮 근무자와 밤 근무자로 나눠 경찰서 취재를 하도록 하고, 수습 기간 동안 취재 윤리와 기사 작성, 방송 실무를 가르치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하리꼬미는 기자가 되려면 누구나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겨져 왔다. 입사하면 언론사에 따라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의 수습기자 과정을 거치는데, 대부분은 그 기간 동안 권역별로 경찰서를 돌면서 사건사고를 확인한다. 취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균 3시간 단위로 선배 기자에게 보고해야하기 때문에 보통 이 기간 동안에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건 물론, 집에도 갈 수 없다.
밤새도록 경찰서를 돌면서 보고를 하는 게 성과로 이어지던 때도 있었다. 사건기자의 출입처가 대부분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새벽 취재인력에 대한 수요가 있기도 했고, 늦은 시간 취재원과 더욱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보 파악에도 유용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생겨 과도한 취재 경쟁에 놓이게 됐고, 경찰서나 병원 등은 업무 방해 등을 이유로 이미 수습기자들의 출입을 막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리꼬미는 유지됐다. 수면과 식사 등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를 통제하면서 한계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으로 전투력이 높은 기자를 키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배와 후배를 처음부터 상하관계로 규정하는 ‘통제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컸다. 기수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는 보수적인 언론 조직에서 하리꼬미는 ‘까라면 까는’ 조직 문화를 가르치기에 충분했다.
언론 조직에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물리적·언어적 폭력과 함께 하리꼬미 역시 제도화된 폭력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사회의 각종 권력형 비리와 갑질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면서도 정작 내부의 불합리에 침묵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뼈아픈 모순이다. 최근 언론사들의 잇단 하리꼬미 폐지 움직임이 주목받는 건, 그 어떤 조직보다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언론이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려도 없지 않다. 기자라는 직업이 늘 시간과 싸우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안에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부딪히면서 얻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많은 언론사가 수습기자 교육 방식을 점검하고 있다. 기자로서의 첫 발을 딛는 가장 중요한 시간, 상명하복을 배우는 교육이 아닌, 선배기자의 값진 경험을 후배기자의 밑거름으로 삼는 진짜 교육은 무엇인지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