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와 그의 동료들은 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신중절을 결정함에 있어 여성 자신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공간을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배를 띄운다. 임신 초기라면 복용만으로도 임신중절이 가능한 유산유도약을 잔뜩 실은 채였다. 해안에서 20km 떨어진 국제수역에서는 선박이 등록된 나라의 법을 따르면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임신중절이 금지된 국가의 항구에 배를 대고,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태워, 임신중절이 합법인 네덜란드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공해상으로 나갔다.
2001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출발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향하는 첫 항해가 시작됐다. ‘위민 온 웨이브즈’라는 이름을 단 선박의 출항은 단박에 신문과 방송의 1면을 장식했다. 레베카는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와 동료들이 탄 배는 ‘살인선’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사회문제조차 되지 못했던 임신중절을 논쟁할 수 있는 문제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은 그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국내에서는 2014년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소개된 이후 공동체 상영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여성단체 초청으로 내한한 영화의 주인공 레베카와 함께 영화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 레베카는 한 기자로부터 “당신도 임신중절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레베카는 적절치 않은 질문임을 상기시키며 답변 대신 질문을 돌려준다. “당신은 앰네스티 위원에게도 고문당한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가.” 임신중절이든 성폭력이든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야만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과 지성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충분히 논리적인 판단을 거쳐 행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레베카의 대답이 통쾌했다.
그러나 기자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 질문이 무례할지언정 불필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급박한 현장에서 레베카를 만났더라면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 질문이 “역시 임신중절 경험이 있으니까 저런 활동을 하는구나”라는 쉽고 폭력적인 결론으로 가기 위한 길이어서는 안 된다. 고루하게도 나는, 내가 가진 지면이 공론장을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한다는 목표를 ‘아직’ 포기하지 못했다.
언론이 임신중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동등한 무게로 다루는 게 옳을까? 임신중절을 ‘신나서’ ‘자발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여성은 단언컨대 없다. 임신중절은 윤리나 법의 영역이 아니라 의료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하며, 이는 여성 건강권의 핵심 문제다. 그런 점에서 <파도 위의 여성들>은 임신중절을 대하는 언론의 질문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불온한’ 영화의 정식 개봉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