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기자’ ‘5만원’ ‘어머니’ ‘북미정상회담’. 이재호 한겨레21 기자가 보여준 어플리케이션엔 날짜별로 단어가 빼곡했다. 이슈, 그날의 경험 등을 키워드로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이재호 기자는 일기를 쓰지 못한 날엔 이렇게 단어를 적어놓고 나중에라도 꼭 정리를 한다고 했다. ‘일기 쓰는 남자’다웠다.
이 기자는 8살 때부터 25년간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지금까지 쓴 일기만 50여권. 1년에 평균 두 권을 썼다. 물론 매일 쓴 건 아니다. 너무 바쁠 땐 한동안 못 쓴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이 3개월을 넘긴 적은 없었다. 이 기자는 “지금껏 쓴 일기를 모두 상자에 모아놓고 있다”며 “또 다른 상자엔 그동안 썼던 기사까지 모조리 프린트해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기는 강박이자 자유였다. 가장 일기를 열심히 썼던 군대 시절, 2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강박적으로 일기를 썼다. 혹한기 훈련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원도 고성 휴전선 근처에선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견디며 텐트에서 랜턴을 입에 물고 일기를 썼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천둥같이 들리면 그 소리에 깨서도 일기를 썼다. 그 때 그에게 일기는 오히려 자유였다. 주어진 한 시간의 휴식시간에서도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일기 쓰기였다.
디지털 부서에 있을 때도 이 기자는 아날로그적인 일기를 찾았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기를 썼다. 이 기자는 “디지털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피가 없어 잘 와닿지 않았다”며 “디지털엔 촉감이 없고 잉크와 종이 냄새가 없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역행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의 유용함과 함께 정보의 범람과 남용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 매체의 필요성도 더욱 느꼈다”고 말했다.
‘일기 덕후’인 그의 소문은 흐르고 흘러 지난 5월 초 한겨레21 회의에서도 나왔다. ‘일기 쓰는 남자’라는 제목까지 뽑혔고 격주 연재가 결정됐다. 지난달 25일자 1217호엔 첫 일기가 세상에 나왔다. 예전에 썼던 일기를 발췌해 현재 그 일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는 형식이었다. 이 기자는 “최근에 기자들을 사람처럼 보지 않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며 “기자 역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비슷한 걸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 또 그들이 사회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연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일기 쓰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자극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이 기자는 “기록과 기억과 망각의 경계는 모호하다. 다들 기록하면 기억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SNS에 1~2분 잠깐 기록하는 것보다 적어도 5분은 생각해야 하는 일기를 쓰다보면 일상이 풍부해진다. 매일이 똑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삶의 원동력도 생긴다”면서 일기 쓰기를 적극 추천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