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켄타우로스’(Kentauros)가 되어야 한다. ‘증강(Augmented) 언론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몇 차례의 칼럼에서는 미디어라는 ‘조직’의 입장에서 바라본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조직의 구성원, 즉 ‘개인’의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말인 반인반마(半人半馬) 종족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머신러닝의 시대에 언론인 개인은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 바로 간파했겠지만, 여기서 ‘말(馬)’은 테크놀로지를 의미한다. 이제 테크놀로지라는 말에 올라타, 자신의 능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테크놀로지라는 말(馬)에 맞서 싸우려하지 말고, 굴복하지도 않으며, 올라타 내 몸처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요즘 조직과 개인 모두 테크놀로지가 바꿀 미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대도 크지만, 우려가 더 커 보인다. 불확실성, 그리고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첨단 분야조차 빠른 시대변화에 걱정이 큰데, 언론은 현재의 모델로는 성장이 정체된 분야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절박함은 충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더 크다.
개인들은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가 만들고 있는 급속한 변화를 목도하며 자신이 20세기 초 영국 짐수레 말의 처지와 비슷하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아무도 자신을 불러주지 않게 된 짐수레를 끌던 말들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공장의 직원은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이렇게 딱 둘이다. 사람의 임무는 개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고, 개의 임무는 사람이 장비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다”라는 농담은 개인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 인공지능의 미래와 관련해, 데이터는 인간의 직관(intuition)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오래된 생각이 있다. 그런데 그건 ‘인간으로서의 소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요즘 세상을 보면 테크놀로지 현실은 그 소망과는 반대로 가는 듯하다.
머신러닝 전문가인 페드로 도밍고스도 명확하게 말했다. 그 반대가 맞다고. 인간의 직관은 데이터를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직관은 사실을 모를 때 사용하는 것이고, 당신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직관이 소중하다. 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마스터 알고리즘’)
# 자, 다시 ‘켄타우로스’로 돌아가 보자. 개인이 맨손으로 거칠고 빠르며 힘센 ‘말(馬)’과 싸우려 해서는 안 된다. 백전백패다. 직관 등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버리고, 말에 올라타 그 말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이게 어디 언론분야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의사, 회계사, 변호사에서부터 펀드매니저, 야구 스카우터까지 모든 개인에게 필요한 모습이다. ‘기계와 싸우는 의사’와 ‘기계에 올라탄 의사’, 그들의 미래는 선명하게 다를 것이다. 이제, 말에 올라타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