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셜미디어와 전쟁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영국 의회와 정부가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소셜미디어 회사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영국 의회의 정보위원회(ICO)는 페이스북에 칼을 빼어 들었다. 지난 4월부터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어 온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에 대해 페이스북의 책임을 물었다.


정치 컨설팅 회사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유출해 지난 미국 대선의 트럼프 캠프 측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가 소속된 SCL 그룹은 다른 자회사, 애그리것 IQ(Aggregate IQ)을 통해서도 ‘친 브렉시트’(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날 것을 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문제는 이처럼 정보가 유출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일부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 데이터 폐기 요청만 했다는 것이다. 곧바로 영국 의회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영국 내 여론을 악화시켰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3개월 만인 지난 7월 11일 정보위원회(ICO)는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지었다. 앞으로도 페이스북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법정 최고 벌금인 50만 파운드가 부과된다.


영국 내각에서도 소셜미디어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강경론이 대세다. 지난 4월, 디지털·문화·미디어 및 스포츠 장관인 맷 핸콕은 “소셜미디어 회사는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앞으로 이들이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할 것”이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7월 15일에는 영국에서 소셜미디어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콤(Ofcom)의 샤론 화이트 의장이 일간지 ‘타임’에 소셜 미디어에 대한 입장을 공개했다. 화이트 의장은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 영국의 독자적인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오프콤 같은 기관의 권한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내각의 강경론에 대한 지지를 나타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영국 정부나 의회가 보인 움직임에 대한 페이스북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페이스북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 이후에 영국에서 눈에 띄게 한 활동은 주요 신문과 지하철의 광고 공간을 빌어 “가짜뉴스는 우리(페이스북)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홍보한 것이 전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인의 페이스북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고 있다. 화이트 의장이 칼럼에서 직접 인용한 오프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에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신뢰할 만한 뉴스 매체”라고 생각한 사람은 39%에 불과했다. 반면 전통적인 뉴스 매체인 신문과 TV는 각각 63%와 70%를 기록했다.


이용자들의 이탈도 가시화되고 있다. ‘가디언’은 7월 26일 기사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과 유럽연합의 정보보호법 도입 여파로 영국을 포함한 전체 유럽지역에서 페이스북의 이용자 수가 무려 300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이러한 사실을 직접 회사의 투자자들에게 밝혔다. 데이터 처리 과정을 개선하는 한편 더 이상의 이용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광고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날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19% 가까이 폭락했다.


하지만 지난 5월에 유럽연합이 발효한 정보보호법이나 영국 정부가 예고한 강력한 규제 아래 페이스북은 예전처럼 정보유출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기업은 향후 1년 매출 총액 4% 또는 2000만 유로 중 큰 쪽을 벌금으로 부여 받는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이 한 달만 늦게 터졌으면 페이스북은 16억 달러를 냈어야 했다.


영국의 경우, 벌금 최고액이 50만 파운드로 페이스북에게 푼돈에 불과할 수 있지만 판결을 내리는 정보위원회(ICO)의 해석은 다르다. “벌금은 나쁜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진짜 목표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다.”


스스로를 전통적인 의미의 미디어가 아닌 플랫폼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온 페이스북이 이번을 계기로 그 정치적 역할을 인정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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