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 전화가 울렸다. 때는 1996년 11월26일. 당시 시사저널 기획특집부 차장이던 김당은 수화기를 들었다. 상대방은 자신을 ‘미스터 장’이라고 표현했다. 미스터 장은 ‘김영삼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대북지원 중단을 외치면서 물밑으로 몰래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다’는 시사저널 기사를 보고 편집국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는 시사저널을 고소·고발한 청와대와 달리 기사 내용이 맞다며 구체적인 지원 시기와 액수까지 알려줬다. 그 한 통의 격려성 제보와 세실 레스토랑에서의 첫 만남 이후 김당 UPI 선임기자와 미스터 장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미스터 장의 본명은 박채서였다. 박씨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소속의 공작원으로 북한 정보기관에 위장 침투하는 이중스파이 공작, ‘흑금성 공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박씨는 대북공작의 일환으로 커뮤니케이션 ‘아자’를 설립해 북한의 대외경제위원회 심의처장인 리철을 상대로 광고사업을 추진하려 했고, 사업 홍보를 위해 김당 기자를 필요로 했다. 김당 기자는 “아자의 광고사업에 홍보가 필요하니 기자 중에 잘 보도해줄만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기자로 제가 선택됐고 베이징에서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와 아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베이징 현지 취재까지 했다”며 “이후 1997년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 사이에 신뢰가 형성됐다. 박씨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본인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나를 만났다”고 말했다.
실제 박씨는 무엇인가 잘못되면 김 기자에게 소포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보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한편으론 김 기자와 정보를 교류하며 그의 특종을 도왔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침투해 사업을 추진할 때도, 국정원에서 해직됐을 때도 김 기자와 박씨의 인연은 이어졌다. 해직 이후 박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년형을 살고 나와 직접 찾은 기자도 김 기자였다. 김 기자를 만났을 때 박씨 손엔 6년 동안 감옥에서 쓴 대학노트 4권이 들려 있었다. ‘사건의 전모를 가장 잘 아는 김형이 이 기록을 토대로 흑금성 사건을 정리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취지였다.
김 기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집필을 시작해 2개월만에 박씨의 수기와 자신의 탐사보도를 바탕으로 한 ‘공작’ 1권을 써냈다. 박씨가 국군정보사령부 공작관으로 근무할 때부터 국정원에 들어가는 과정, 이후 국정원에서의 공작 과정과 해직까지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논픽션이었다. 1권의 편집이 끝난 3월부턴 박씨의 해직 이후의 삶과 국보법 위반으로 6년형을 살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공작 2권을 썼다. 김 기자는 “북한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확인할 수 없어 집필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다만 과거 리철과 만나 여러 사실을 확인했었고 일부 내용들도 이미 크로스체크를 통해 검증한 것들이었다”며 “끝내 확인하지 못한 내용은 박씨의 양심을 믿고 썼다”고 말했다.
오는 8일엔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공작’도 개봉한다. 김 기자의 조언과 박씨의 수기를 토대로 한 영화다. 김 기자는 “6·25 전쟁 이후 남·북한 간엔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부정적인 성격의 공작이 난무했다”며 “사실은 남·북한 사이에도 협력과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긍정적 방향의 공작 역시 무수히 많았다. 그걸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고 그 메시지가 독자에게 잘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