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행 열차가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북녘 땅을 다시 밟는구나.’ 방북 성사를 위해 맘 졸였던 장면들이 차창 밖 풍경 속으로 지나쳐갔다. 재미언론인 진천규씨는 지난해 10월6일 ‘단둥-평양 국제여객열차’에 몸을 싣고 평양으로 향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취재 기자단 일원으로 방북했으니 17년 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방북 취재는 올해 7월까지 네 차례 이뤄졌다.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지를 취재했다. 그는 최근 방북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읽었다는 3권의 책에 끼어있었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진천규씨를 만났다.
“17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은 많이 변했더군요. 자동차와 휴대폰이 눈에 띄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취재 때는 자동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이 있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더군요. 특히 휴대폰 사용은 일상이었어요. 평양 거리를 걷다 보면 ‘메시지를 날리라’ ‘누구요? 잘못 걸었어요’ 이런 말들이 막 들려옵니다. 마트엔 떠먹는 요구르트가 있고 과일도 팔아요. 강력한 대북제재로 못 먹고 못 살고 어렵고 남루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몰랐던 거죠.”
JTBC 실무진이 지난 7월 방북했지만 그전까지 한국 언론인의 단독 방북 취재는 없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제재 조치로 우리나라 국민의 방북은 사실상 불허됐다. 진씨의 방북 취재는 5·24조치 이후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2001년부터 미국 LA 한국일보에서 근무하면서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대한민국법상 북한을 방문하려면 통일부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해외거주 영주권자는 신고만 하면 방북할 수 있다.
그는 요즘 여러 곳에 강연을 하러 다닌다. 충남 예산과 홍성, 경기도 수원, 인터뷰 전날엔 경기도 안성을 다녀왔다고 했다. 평양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 평양 거리와 사람들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북쪽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보든 보수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가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여년 간 우리는 북쪽에 대해 알거나 접근할 방법이 없었어요.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라치면 ‘종북’이니 ‘좌파’니 ‘빨갱이’로 낙인찍고 게다가 국가보안법이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옥죄어 지는 거죠. 제가 잘나서 여러분 앞에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운 좋게 북한을 여러 차례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게 있기 때문이죠. 30년 기자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제가 경험한 북쪽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입니다.”
1986년 경인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때 경력기자로 합류했다. 사진기자인 그는 그해 유엔사의 군사 정전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을 출입하면서 북한 취재와 인연을 맺었다. 1992년 2월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정상회담 당시 두 번째 방북 취재를 했다. 방북 취재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결정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특히 2000년 6월14일 평양 목란관 연회장에서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들어 올리는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그의 방북 성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방북 취재 계획서에 이 역사적인 사진을 찍은 기자가 자신이었다며 어필했는데, 2005년 북쪽에서 만든 6·15정상회담 다큐멘터리에 김 위원장이 이 사진을 찍은 뒤 “기자 선생, 우리에게 출연료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 북쪽에서도 이미 그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신뢰했다.
그는 평양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셔터를 눌렀다. 대동강에서 낚시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들, 모란봉공원에서 결혼식 기념 비디오를 찍는 신혼부부와 친구들, 옥류관에서 고기쟁반국수를 먹는 사람들, 퇴근길에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직장인들, 마트 식품매대에서 아이 간식거리를 고르고 있는 젊은 엄마, 책을 보며 길을 걷는 학생들, 려명거리 73층 아파트 살림집 내부 등등. 사람 사는 모습은 평양이든 서울이든 매한가지였다.
그는 방북 취재 과정에서 평양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며 취재했다. 4차례 평양 방문 기간 수천 장의 사진과 수백 분 분량의 동영상을 찍었다. 그런데, 한번은 사진을 찍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채 즐겁게 걷고 있는 여학생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는데, 한 여학생이 “우리를 왜 찍습니까?”라며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안내원이 나서서 “남쪽 기자 선생님이 허가를 받고 취재 중”이라며 20여분 간 설득한 끝에 여학생들을 달랠 수 있었다. 안내원은 그가 외국인 기자였다면 “헬로우”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조선에서는 남조선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다”면서 이런 예를 들었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으면 허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남조선 기자들은 그런 허름한 모습만 찍어 북쪽의 전체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한다. 5%의 현상을 가지고 100%처럼 보도하니 억울하다. 억울한 것을 풀어주는 게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조선 기자들은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것 같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 기자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기자인 그에게 아프게 다가왔다.
그 또한 한국 언론의 일부 북한 보도에 사실 확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마식령 스키장을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사고로 여러 번 영업이 중지된 것으로 안다”고 무책임하게 보도하거나 싱가포르 북미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호텔 숙박비를 누가 내는지를 이슈화한 보도는 마치 돈이 없어 숙박비를 내지 않으려는 뉘앙스로 남북관계 진전에 손톱만큼의 도움도 안 된다고 했다.
북쪽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무엇이든 좋지 않게 보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일면만, 잘 사는 평양과 일부 특권층의 모습만 보고 온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가 만일 취재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말이나 글로 북한의 상황을 설명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난 북쪽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느 사회나 음양이 있기 마련”이라며 “서울만 하더라도 강남에 수십억원 넘는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40도까지 치솟은 폭염에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사는 독거노인들이 있다. 어느 외국기자가 타워팰리스를 찍어 여기가 서울이라고 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또 다른 기자가 쪽방촌을 찍어 서울이 남루하다고 하면 그 보도를 믿을까. 우리가 북한의 왜곡된 모습에 들씌워져 살아온 것은 아닐까”라고 했다.
그의 여섯 번째 평양 방문은 올해 6월23일부터 15일간이었다. 역사적인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이후였다.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지만 평양 시민들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를 통해 회담 내용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급속히 진전되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서 평양도 고무되어 있는 듯 했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평양 시민들의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석유 한 방울, 나사 못 하나 들어오지 못하는’ 제재를 풀어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8월 중순쯤 북한에 다시 들어간다. JTBC가 추석특집으로 북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제작을 맡았다. 그가 준비 중인 통일TV에서 북쪽 인력을 지원 받아 제작하고 JTBC가 방송을 내보낸다. 통일TV는 역사물, 자연 다큐멘터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 등을 제작 방영하는 케이블채널 전문 방송사로 빠르면 올 연말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일TV는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체제나 주의주장과 무관한 영상물을 함께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점차 거리를 좁혀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 10월 방북 때부터 추진했죠. 400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 중에 북쪽을 제대로 알리는 전문채널이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이번 방북에서 북측 영상물 저작권을 확보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입니다.”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하지만 칼끝에 올라 서 있는 심정이다. 남쪽에서 볼 때, 북쪽의 지령을 받고 체제선전이나 하면서 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고 북쪽도 혹시 저 사람이 남쪽 당국의 부탁으로 우리 정보를 빼내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어서다. 그의 표현을 빌면 ‘한발만 삐끗하면 죽는 길’이다. 그는 내가 살 길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딴 게 있을까요. 기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됩니다. 기자 본연의 역할이 뭔가요. 있는 그대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죠. 편향되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보도한다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수 있어요. 나는 이런 자세로 북쪽을 취재하고 그 모습을 알리고 있습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