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보도는 이미 뒷북… 기자 만의 '앵글'로 탐사보도 러시

언론사 탐사보도 전성시대

“KBS 탐사보도부는 공공기관 경영정보 사이트 ‘알리오’(alio.go.kr)에 등록된 공공기관 330개 전체를 상대로 “국회의원 해외출장 지원 내용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지난 한 달 동안 관련 보도를 계속해 왔습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공기관이 보내온 출장결과보고서 등을 토대로 수집된 정보를 아래와 같이 의원별로 공개합니다.”(5월24일자 KBS뉴스9 보도)


“매년 국회의원에게 들어오는 후원금은 수백 억 원 규모입니다. 그럼 국회의원들은 후원금을 어디에 얼마나 쓸까요? 저희 MBC 탐사보도부는 지난 19대 국회(2012~2016년) 중 임의로 정무위원회를 선택해서 소속 의원들(32명)의 회계보고서를 들여다봤습니다. 임기 4년 동안의 회계보고서는 그 양만 해도 7000 페이지가 넘어서 분석에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6월8일자 MBC뉴스데스크 보도)


바야흐로 탐사보도 전성시대다. 주요 언론사들이 방송과 신문, 온라인을 막론하고 탐사보도 부서를 신설하거나 확대하며 열을 올리는 움직임이다.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KBS 탐사보도부는 지난 5월부터 <국회의원 해외출장 전수조사> <‘국정원 4대강 민간인 사찰’ 문건 단독 공개> 등의 굵직한 이슈를 심층 보도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 출장을 남용한 실태를 330여개에 달하는 피감기관들에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연속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개인 자격으로 가는 출장비를 기업이 대신 내도록 떠넘긴 의혹도 밝혀냈다.


KBS의 탐사보도는 지난 2005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각종 비리 의혹 등을 보도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권의 미움을 사며 해체와 통합 과정을 거치는 수난을 겪다 올 초 양승동 사장이 취임하며 다시 부활했다. 현재 탐사보도부에는 부장과 팀장을 포함해 취재기자 9명, 촬영기자 3명, 데이터분석과 리서처 등 전체 20여명으로 구성돼있다.


유원중 KBS 탐사보도부장은 “제보나 기자의 단편적인 취재를 통해 큰 아이템으로 확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큰 이슈, 재벌이나 국회, 청년일자리, 양극화 등을 다뤄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큰 틀을 잡고 좁혀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도 지난해 말 최승호 사장이 온 뒤로 보도국에 탐사취재팀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지난 6월부터 <의원님들은 여기서 00와 밥을 먹는다> <사학비리 눈감는 교육부…용기 낸 신고 묵살> <정말 있을까 공항 ‘비밀통로’> 등의 아이템을 다뤘다. 최근에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합작해 사이비 국제학술단체 WASET(와셋)에 한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MBC 탐사취재팀은 보도국장 직속으로, 취재부서에서 독립돼있다. 인원은 팀장 포함해 총 10명. 기존에 기획취재팀이나 탐사보도부가 기자 4~5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인사에서 힘을 실어준 셈이다.


성장경 MBC 탐사취재팀장은 “탐사보도는 언론 취재 본연의 영역이고 그 부분을 강화하는 건 언제든지 강조돼왔다. 국장 직속으로 둔 건 각 부서에서 벗어나 독립된 조직으로서, 기한이 한 달이 됐든 두 달이 됐든 취재 자율성을 보장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성 팀장은 “그동안 하고 싶은 보도를 못해 위축이 되고 성역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아이템을 하도록 열어두고 있다. 뉴스타파와의 협업도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공유한다는 측면도 있고, 특화된 탐사보도 매체에 배우는 점도 많다고 생각해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SBS도 올 초 기존의 기획취재부를 탐사보도부로 이름을 바꾸는 등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지난해 <5.18 헬기 사격의 진실> <5,18 기무사 비밀문건> 등 5.18 왜곡에 맞서 연속 보도를 한 SBS는 올해에도 <에버랜드의 수상한 공시지가와 삼성 합병> <군병원 불법 의료 실태> 등의 기획보도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삼성 그룹에 대해 5~8꼭지를 할애하며 후속 보도를 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지난 5월에는 <유명 침대서 ‘1급 발암물질’ 라돈 대량 검출> 등 라돈침대 이슈를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시켰다. SBS는 탐사보도부의 선전으로 올해 상반기 ‘이달의 기자상’을 6회 연속 수상했다.


현재 SBS 탐사보도부는 ‘끝까지 판다’팀과 ‘사실은’팀으로 구성돼있다. 여기에는 부장과 데스크를 포함해 모두 11명의 기자가 있다. 정명원 SBS 탐사보도부 차장은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탐사보도를 강화해야겠다는 요구가 반영돼 부서가 신설됐다”며 “취재된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고 힘들더라도 본질에 파고드는 취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TBC는 지난해 말 기존의 탐사팀을 사회3부로 확대 개편한 이후 발굴 기획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 백혈병 논란> <다스 비자금> <장자연 사건> <서지현 검사 미투> 등의 기획이 대표작이다. 사회3부에 속해있는 탐사팀은 총 10명. 손용석 JTBC 사회3부장은 “권력에 대한 고발이나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곳을 대상으로 하고, 단발 보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보도를 통해 관련 법이나 규정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손 부장은 “기존 출입처가 다루지 못하는, 예를 들어 법조 같은 경우에는 법원이나 검찰보다는 변호사들이나 시민단체 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이다. 제보도 활용하고 있고 과거 사건 중에 규명이 안 된 것에 문제제기를 한다”고 덧붙였다.


신문사들도 잇따라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추세다. 한겨레의 탐사팀은 올 초 조직개편 때 신설된 이후 꾸준히 기획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박용현 편집국장은 신문 언론의 미래를 ‘탐사’에서 찾겠다는 뜻을 전하며 “권력형 비리뿐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과 밀착한 교육, 복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를 사정권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이후 한겨레는 <네이버에 갇힌 대한민국> <한나라·새누리도 매크로> <강대희 서울대총장 성추행 의혹> <구치소에서 보낸 일주일> 등의 탐사 발굴 기사를 속속 내놨다.


이재성 한겨레 탐사에디터는 “팀이 생기고 발굴 스트레이트에 집중했고, 앞으로는 호흡을 좀 더 길게 가져가는 대형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며 “8월 말에 평화원정대 연재를 끝내고 디스커버팀이 합류하면 탐사팀 인원이 8명 정도로 보강될 예정이다. 팀을 하나 더 만든다는 생각으로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도 지난 4월 탐사보도팀을 신설하는 등 기획 보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속보와 스트레이트를 다루는 통신사에 탐사보도 부서가 생긴 데에는, 지난 3월 취임한 조성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은 지난 7월 <내신출제 믿을만한가> 이슈를 연속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임화섭 연합 탐사보도팀장은 “내신 성적과 관련해서 기획 보도를 내놓은 이후 믿을 만한 제보가 이어져서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탐사보도를 확대하는 건 ‘신뢰’를 회복하자는 본연의 의미가 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신뢰에 대한 목마름이 커지자, 탐사보도로 이를 해소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몇 년 새 모바일 유통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전통 매체에서의 일반 스트레이트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신문사의 탐사 기자는 “스트레이트는 이미 SNS나 1인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이 이를 다루면 뒷북을 치는 격이 된다. 호흡이 길고 심층성 짙은 탐사보도로 차별화된 기사를 만드는 게 앞으로 저널리즘이 나아가야하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출입처 자체가 기존 권력이잖아요. 출입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쓴 보도자료나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죠. 탐사보도부는 출입처가 없으니까 이슈를 볼 때도 자기만의 앵글로 보게 돼요. 출입처에 매여서 기사나 이슈를 바라보지 않고, 사각지대에 놓인 곳을 파헤치고 고발기사를 자유롭게 낼 수 있습니다.”(손용석 JTBC 사회3부장)


“출입처라는 게 특종을 해도 시간차 간격이고, 진정한 의미의 특종이나 기획은 드물어요. 차별성 있는 기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뉴스 현장에서 나와서 다른 호흡을 가지면서 다른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합니다.“(이재성 한겨레 탐사에디터)


물론 인력과 비용이 한정돼있는 현실에서 탐사보도를 장기간 추구하기란 버거운 일이다. 제보양도 매체마다 양극화가 극심한데다, 이전보다 사회가 투명해진 만큼 고발할만한 소재도 많지 않다는 게 이유로 꼽힌다.


탐사보도의 고질적인 과제인 인력난도 여전하다. 임화섭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장은 “기획성이나 폭로성 취재를 할 때 인원이 많이 필요한데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그 분야에 대해서 지식이 많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명원 SBS 탐사보도부 차장도 “보도국의 지원으로 일부 충원이 됐지만 취재하는 프로젝트가 여러 개 돌아가면 운영이 버거울 정도”라며 “52시간(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가 큰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유원중 KBS 탐사보도부장은 “출입처에 의존하다보면 뉴스의 프레임이 보도자료 나오는 거에 갇힐 수 있다. 발굴뉴스나 우리의 시각으로 사회를 보는 게 아니라 정부나 국회, 사법기관의 시선에 따라 큰 줄기를 타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당장 취재 관행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회사에서 투자를 하고 늘려나가면 탐사보도가 전반적인 보도의 틀을 바꿔나가는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설명했다.


유 부장은 “실제로 탐사보도부를 거쳐 간 기자들이 다시 취재부서로 돌아가도 보도자료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하고 이면의 데이터를 확인해보고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며 “탐사보도부가 해체되지 않고 계속 끌고 왔다면 더 많은 KBS 기자들이 거쳐 갔을 것이고, 지금쯤이면 보도국의 정치, 경제, 사회부 모습도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뉴스 리포트 수를 따질 게 아니라, 1년에 하나를 해오더라도 믿고 투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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