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0일 비공개 회의 끝에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11기 이사진을 선임하면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둘러싼 오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방문진 이사에 박근혜 정권 당시 정권의 언론장악에 적극적으로 간여한 것으로 치부되는 인사들이 정치권의 압력으로 선임된 정황이 포착되는 등 ‘정치권의 방문진 이사 나눠먹기’라는 고질적 관행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이사 후보의 신상을 공개하고 시민 의견 수렴절차를 마련하는 등 이사 선임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공언해 온 이효성 방통위마저 정치권의 ‘관행’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정치권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는 방송법 개정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11기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9명의 신임 이사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최기화 전 MBC 기획본부장과 김도인 전 MBC 편성본부장이다. 언론시민단체와 언론노조 MBC본부의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방문진 이사로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졌다. 최 이사는 2015년 MBC 보도국장 재직 당시 자사의 보도를 비판하는 MBC본부의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보고서를 찢어버린 일 등과 관련해 노동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고가의 공연표를 선물 받은 뒤 감사인사 문자를 보낸, 이른바 장충기 문자 언론인 리스트에 올라 있기도 하다.
한편 김 이사는 MBC 편성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에 연락해 특정 인터뷰이와 아이템을 강요한 인사다. 세월호 참사보도 등에서도 중립성을 강조하는 등 무리하게 제작에 개입했고 이에 반발하는 PD들을 인사조치, 내부 구성원들의 극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논란이 있는 인물이 선임된 것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선임에 정치권의 노골적인 개입이 이뤄졌다는 점이 본질적인 문제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지난 16일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신임 이사 선임과 관련해 “정치권의 관행, 특정 정당의 행태를 무시할 경우 일어날 파장과 정치적 대립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이사의 배후에 특정정당이 있었고 그 압력에 굴복했음을 시사한 셈이다. 이와 관련 MBC본부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최기화-김도인을 밀어붙이라고 자유한국당 추천 김석진 방통위원에게 ‘오더’를 내린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는 현 여권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방문진법 6조4항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 여권도 이런 현행법 규정을 무시하고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개입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공정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정치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송법 개정이 필수다. 이미 공영방송 이사를 일반국민 200명으로 구성된 이사추천국민위원회가 선정하는 법안(추혜선 의원 발의), 지역성과 직능성을 고려해 주요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로 선정하는 방안(강효상 의원 발의) 등 다수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공영방송 편향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논의 지체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