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트럼프 사설 연대'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지난 16일(현지시간) 보스톤글로브, 뉴욕타임즈 등 미 전역의 350여개 신문사가 일제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과 언론에 대한 공격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권력의 핵심 대통령과 그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언론은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만 이처럼 같은 주제(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 한날 한뜻으로 비판한 것은 미국은 물론 세계 언론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당연히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사설 연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CNN 등 방송사와 NPR 등 라디오에서도 관련 사실을 크게 보도하며 동지 의식을 나타냈다.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 낙인찍고 “언론은 미국 국민의 적이다”는 말을 하는 등 도저히 미 대통령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언론에 대한 현직 대통령의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공격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미 국민들은 NYT, 워싱턴포스트 등 신뢰도 높은 언론도 “편파적이다”고 믿기 시작했다. 극좌와 극우는 언론이 애초부터 편파적이라고 보고 언론 보도를 믿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균형 잡힌 시각이 중요하다고 믿는 미국인들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보스톤글로브, 뉴욕타임즈 등이 사상 초유의 ‘사설 연대’를 해서 부당함을 드러내야 할 정도로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론인들이 ‘사실 보도’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사설 연대’에 동참한 언론사도 용기를 낸 것이지만 동참하지 않은 언론사도 용기를 내야했다. 침묵을 한다면 마치 트럼프의 언론관에 동의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LA 타임즈 등 유력 매체들은 왜 ‘사설 연대’에 동참하지 않았는가를 별도 사설로 밝혔다. 미국내 대표적 ‘야도’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SF 크로니클은 “진실 보도를 향한 트럼프의 공격을 방어하고 언론 자유를 수호하며 미국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본령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확실히 하면서도 “우리의 가장 근본적 가치는 ‘독립적이어야 한다(independence)’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독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언론사가 연대를 하는 것은 독립성에 배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어 “(신문사 내에서도) 사설과 사실 보도는 구분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신문사들이 선거 때 지지자를 드러내는 이유다”고 강조했다. 즉, 경영(회사측)과 편집국(뉴스룸)이 구분을 두고 경영적 판단이 사실 보도에 영향을 줘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사설과 편집국내 보도도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 편집국, 논설실이 ‘같은 논조’를 이유로 ‘혼연일체’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의 언론관뿐만 아니라 이민자 정책, 무역 전쟁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LA타임즈도 비슷한 입장을 나타냈다. LA타임즈는 특히 ‘집단 사고(Group think, 응집력이 높은 소규모 의사결정 집단에서 대안의 분석 및 이의 제기를 억제하고 합의를 쉽게 이루려고 하는 심리적 경향)’를 경계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LA타임즈는 “사형제, 기후변화,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글로벌 이슈에 언론사가 같은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사설을 게재하지는 않는다”며 “우리의 스케줄에 맞게 입장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사설 연대’에 참여한 언론사들도 그렇지 않은 언론사들도 현재 글로벌 미디어 지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언론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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