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스펙트럼 다양… 독일 기자 3명 중 1명이 프리랜서

[기자들의 삶 / 세계 언론인과의 대화] ② 독일

독일의 신문 시장은 서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다. 독일을 넘어 유럽 최다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타블로이드지 ‘빌트’가 건재하고,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100만부 안팎의 발행부수로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정치적 스펙트럼이나 매체 형태도 다양하고, 지방지의 권위도 높은 편이다. 또 하나 독일 신문 산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집중화다. 거대 미디어 그룹이 복수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며 시장 점유율을 독점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빌트’를 발행하는 독일 최대 신문기업 악셀 슈프링거의 일간신문 시장 점유율은 20% 정도를 차지하며, 악셀 슈프링거를 포함한 5대 언론 재벌 그룹의 시장점유율은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6일 방문한 독일의 풍케(Funke) 미디어 그룹도 바로 그 언론 재벌 중의 하나다. 풍케 그룹은 주로 잡지를 만드는 곳이었으나, 약 4년 전부터 각 지역의 신문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총 12개 신문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12개 신문은 베를린에 있는 풍케 그룹 중앙편집부에서 제공하는 기사를 공급받아 제작한다. 정치, 국제, 과학 등 주요 분야 뉴스는 중앙편집부에서 제공하고, 지역 뉴스와 사설, 논평 등만 각 지역에서 직접 제작하는 구조다. 12개 신문의 발행부수를 합치면 약 140만부. 이 판매 부수를 무기로 메르켈 총리 같은 주요 정치인에게 인터뷰를 요구할 수 있는 권위와 영향력을 갖는 셈이다.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전략이지만, 그 대가로 지역 신문에서 일하던 많은 기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풍케 미디어 그룹 중앙편집부에는 60여명의 기자들이 있다. 사무실 한 쪽 벽면에는 12개 신문의 편집 상황이 실시간으로 띄워진 12개의 스크린이 있었다. 매일 오전 10시 전체회의가 열리고, 12개 신문 지면을 채울 주요 뉴스의 취재와 편집 방향이 결정된다.


이곳 중앙편집부에서 만난 죄렌 키텔 기자는 주로 정치, 국제 뉴스를 다루는데 대개 현장성이 강한 취재를 선호한다. 그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 테러가 발생하면 바로 그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며 “전 세계가 노동 현장”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이라크, 영국,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누볐다. 런던 테러와 맨체스터 테러 현장을 취재하고,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은 ‘개구리소년’ 아버지를 인터뷰하러 한국을 찾기도 했다. 키텔 기자는 앞서 지난 2014년 국제 기자 프로그램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약 1년간 한국에서 지냈는데,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책 ‘맑은 날이면 북한도 보인다’는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키텔 기자는 베를린 지역 일간지인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악셀 슈프링거 그룹의 ‘디 벨트’지에서 2년간 기자 교육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1~2년간의 수습기자 교육을 거쳐 기자가 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수습기자 교육 과정이 언론사 입사와는 별개라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언론고시’라 불리는 언론사 입사 시험에 합격하면 해당 언론사의 수습기자로 채용이 되지만, 독일에선 수습기자 교육과 언론사 입사 과정이 따로 진행된다. 키텔 기자의 경우도 기자 교육은 디 벨트에서 받았지만, 정작 입사는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로 했다.
카타리나 보어샤트 기자도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의 국영 해외방송 ‘도이체벨레’에서 약 1년 반 동안 기자 교육을 이수했지만, 언론사에 입사하는 대신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선택”이라며 “독일에선 기자들이 소속 없이 일하는 게 어색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기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소속 없이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 교육은 누구나 지원 가능하지만,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은 이론과 실무를 병행하며 약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기사 작법이나 인터뷰 방법 등 이론적인 내용을 주로 배우고 약 1년은 현장 실습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는다. 이 기간에는 직접 취재하고 자신의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를 작성하며, 급여도 받는다. 키텔 기자는 월급으로 1200유로를, 보어샤트 기자는 1000유로를 받았다고 했다. 요즘은 언론사별로 아카데미를 만들어 기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습기자 교육을 시키면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보어샤트 기자는 처음부터 정규직 기자가 되길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자 교육을 마친 뒤부턴 쭉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독일 기자협회에 따르면 회원의 30~40%가 프리랜서일 정도로 독일 기자 사회에서 프리랜서 기자들의 비중은 크다.


보어샤트 기자는 한 달에 2주 정도는 베를린에 머물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다른 2주는 독일 남서부 지방인 바덴바덴에서 라디오 방송국 SWR2의 기자와 DJ로 일한다. 2주마다 기차로 왕복 12시간의 고된 여정을 반복해야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여러 종류의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프리랜서 기자들은 언론사에 먼저 제안서를 보내기도 하고, 언론사로부터 취재 의뢰를 받아 글을 쓰기도 한다. 보어샤트 기자도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열심히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일과 경력을 관리한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프리랜서 기자들의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언론사들이 디지털 전환 등을 이유로 신문 원고료를 줄이면서 프리랜서 기자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 같은 경우 한 달에 반 정도를 SWR2에서 일하며 일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계약이 돼 있어서 경제적 기반이 안정적인 편이지만, 정말 기사만 써서 먹고 사는 프리랜서들은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꿈을 물으니 “독일 연금이 67세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하고 싶다”면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67세 이후에도 계속 기자로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독일 베를린=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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