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추진을 제안한 것은 우리 외교사 차원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다. 특정 국가 발전을 위한 구상이 아니라 참여 국가 전체의 공동 이익을 상정한 개념이라는 점은 매우 주목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제안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중요한 배경이다.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해 나라마다 철도 궤도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 자주 거론된다. 그렇지만 기술적 문제는 지정학적 요인에 비하면 쉬운 문제다. 경제 대국인 일본이나 경제 강국인 한국이 참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북한이 중간에 끼여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에 어려움이 있다. 북한이 적극 참여하면 되지만, 한국이나 일본과 적대 관계가 유지되는 한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남쪽에서 햇볕정책 승계를 공언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지난 10년 가까이 악화일로를 걸어온 남북 관계를 돌이키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참여와 관련해 가장 큰 장애물은 비핵화 문제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름대로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북미 수교와 평화 협정 체결, 제재 해제 등의 상응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비핵화가 실제로 이뤄질 지 여전히 예단할 수 없다.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각각 다른 방향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공통 분모를 찾아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 차원에서 중국 동북 3성이 교통과 물류 중심으로 부각하는 상황을 원한다. 신동방 정책을 추진 중인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가 유럽에서와 같은 수준의 존재감을 확보하려고 한다. 초원의 길 구상을 추진하는 몽골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해서 경제적 도약을 추구한다. 이처럼 기존에 동아시아 경제 협력과 관련해 제기된 구상은 대부분 자국 중심의 발전 구상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나라별로 정치적, 경제적 이익 충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오랫동안 북한과 적대 관계에 집중하면서 북한을 포함해 주변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과장하고 왜곡함으로써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통로를 스스로 막아놓았다. 다른 나라와 교감하고 설득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외교 분야 엘리트를 중심으로 과거 왜곡된 지식 생산과 유통이 존재한 것에 대해 각성하는 노력이 선행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을 계기로 외교 분야 엘리트들이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기존 상식 가운데 왜곡된 부분을 찾아내고 교정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객관적 지식과 정보가 바탕이 된다면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이 현실적인 구상이라는 평가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