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언론인 비선 실세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 중 폭스 뉴스가 부동의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폭스 뉴스의 프라임 타임 뉴스쇼로 저녁 9~10시에 방영되는 ‘해너티’(Hannity)의 진행자는 숀 해너티(Sean Hannity) 앵커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뉴스 프로그램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스튜디오 J’에서 주로 제작된다. 뉴욕 매거진 등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사는 해너티는 저녁 10시에 자신의 뉴스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김없이 백악관으로 전화를 건다. 백악관 전화번호는 202-456으로 시작되고, 나머지 4자리 숫자로 수신자가 갈린다. 해너티가 백악관 대표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면 교환원이 받는다. 해너티는 저녁 10시에 교환원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바꾸라고 한다.


백악관 전화 당직자실에는 트럼프와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인사의 명단이 있다. 그 숫자는 수십 명 가량이다. 트럼프의 자녀 등 가족, 루퍼트 머독 폭스 뉴스 오너, 사모 펀드 억만장자 스티븐 슈워츠만 등과 함께 해너티가 이 명단에 들어 있다고 뉴욕 매거진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일 저녁 7시께 퇴근한다. 그는 백악관 웨스트윙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서 나와 3층 관저로 이동한다. 트럼프는 관저에 머무는 저녁 시간을 대체로 혼자 보낸다.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와는 각 방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교환원이 밤 10시에 해너티의 전화가 왔다고 하면 즉각 연결하라고 한다. 트럼프와 해너티는 이때 잡담을 하기도 하지만 국정 전반에 관해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하루 일과는 해너티와의 전화 통화로 끝이 난다. 트럼프가 아침에 일어나 트윗을 날리는 내용은 해너티와 잠들기 전에 했던 얘기인 사례가 많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해너티는 저녁 10시에만 트럼프에게 전화를 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하루에 여러 번 통화하기도 한다고 뉴욕 매거진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전통이나 관례를 무시하는 ‘제멋대로’ 행보로 매일 같이 논란의 중심에 선다. 특히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해너티는 이때마다 트럼프의 편을 들어준다고 한다. 트럼프는 해너티의 격려와 위로를 받으면서 전의를 다진다. 미국 언론은 이런 해너티를 ‘그림자 백악관 비서실장’(CNN)이라고 부른다. 한국식으로는 ‘최고 비선 실세’이다. 해너티가 진행하는 ‘해너티’는 수시로 야당인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등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검에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짜 뉴스’도 해너티의 단골 아이템이다.


해너티는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정도를 걷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그림자 백악관 비서실장이라고 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매도한다. 트럼프와 해너티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 ‘마녀 사냥’이다. 두 사람은 서로 가짜 뉴스가 마녀 사냥을 하는데 맞서 싸우는 전우로 여긴다. 대학을 중퇴했던 해너티는 캘리포니아의 한 지방 라디오에 출연해 동성애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폭스 뉴스 창업자인 로저 에일리스가 1996년에 그를 고용했다.


해너티는 2011년에 처음으로 트럼프를 만났고, 이때부터 “버락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다”는 말을 트럼프에게 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트럼프가 오바마에게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해너티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 해너티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뿐 아니라 인사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최근 백악관 공보국장에 발탁된 빌 샤인은 폭스 뉴스 공동 회장 출신으로 해너티가 추천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해너티가 트럼프의 법률 고문인 마이클 코언을 개인 변호사로 둔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해너티가 공화당의 유력 인사들과 자주 골프를 한다고 전했다. 해너티가 최순실씨 사건을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해너티가 최 씨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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