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CNN을 켜두고 지냈다. 그러고 싶었다. 존 매케인을 기억에 오래 넣어두고 싶었고, TV에 출연한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의 간만의 ‘사이좋은 모습’도 신기했다.
사실 언론의 당파성은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다. CNN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폭스TV를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나온다. 양극단으로 가고 있는 미국의 정치와 같은 모습이다.
그런 미국의 정치와 미디어를 잠시나마 바꿔놓은 이가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81세를 일기로 8월25일 별세했다. 지지난 토요일, TV를 보다 CNN에서 매케인의 가족이 치료중단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때부터 CNN은 ‘미국의 영웅’(American Hero)라는 문패를 달고 매케인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그야말로 하루 종일 그의 별세 소식을 방송했다.
이처럼 매케인이 미국 전체의 존경을 받으며 세상과 이별한 것은 그가 정치를 하면서 정파나 당리당략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CNN의 표현대로, 그는 ‘미국의 영웅’이었다. 우선 ‘전쟁 영웅’이었다. 1967년 베트남 전쟁에서 비행기 격추로 생포되어 5년 넘게 포로생활을 하며 고문을 당했지만, 월맹군의 우선 석방 제안을 거절했다. “나보다 먼저 붙잡힌 포로가 모두 석방될 때까지 풀려날 수 없다.”
그는 또 품격 있는 ‘정치 영웅’이었다. 오바마와 경쟁했던 2008년 대선. 유세 중 한 여성 지지자가 오바마의 인종을 문제 삼으며 “그를 믿을 수 없다. 아랍인이다”라고 하자 매케인은 이렇게 경쟁자 오바마를 옹호했다. “아니다. 그는 품위 있는(decent) 가정의 미국 시민이다….” ‘영웅’이란, ‘품격’이란, 이런 것이다.
매케인의 장례차량이 시골길을 따라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로 가는 장면을 생중계하던 CNN 화면에는 농부가 손으로 쓴 듯한 커다란 글씨가 잡혔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이 글을 마무리하며 CNN을 보니, 전날의 장례식 모습을 반복해 방송하고 있었다. 앞자리에 오바마, 미셸, 부시, 로라, 클린턴, 힐러리가 보였다. 세 전직 대통령 부부들이다. 민주당, 공화당, 민주당이다. 오바마가 추모사를 하던 한 대목에서 부시는 옆자리에 앉은 미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또 부시가 부인 로라 손에 있던 무언가를 집어 미셸에게 건네주며 미소 짓는 장면도 반복해 나왔다. 초콜릿이나 사탕이었을까. 그게 무엇이었든 어떠랴.
이제 ‘동화’는 끝났다. 다시 미국의 정치와 미디어는 당파적인 ‘현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지난 열흘 동안 매케인이 만들어 준 ‘품위 있는 정치의 모습’은 오래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훨씬 짧더라도 좋겠다. 우리의 정치에서도, 방송과 신문에서도 그런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