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산별협약, 공정방송 지렛대 돼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MBC·SBS·EBS 등 지상파 방송 4사가 제55회 방송의 날인 지난 3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산별협약을 체결했다. 언론사 노조가 2000년 산별노조로 전환한 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산별교섭의 결실이다. 교섭 주요 의제를 공정방송, 제작환경 개선, 방송의 공공성 강화와 진흥으로 정하고 지난 6월12일 교섭을 시작, 17차례 교섭한 끝에 타결된 이 협약은 현재 지상파 방송의 당면과제를 망라하고 있다. 그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방송계의 핵심과제이지만 개별 방송사 차원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나서지 않았던 그간의 사정을 감안, ‘산별’ 이라는 공동 논의 구조를 통해 서로 이끌어주도록 한 게 이번 교섭의 취지다. 

    
공정방송 실현 의무와 제도를 명확히 하도록 한 합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력의 외압에 시달리는 우리 방송계의 현실을 볼 때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노사가 편성·보도·제작 책임자를 임명할 때 방송의 공정성·독립성·제작 자율성 실현 능력을 고려하고 임명·평가를 할 때 종사자들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한 게 합의의 골자다. 구체적으로 노사동수로 공정방송기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공정방송을 저해한 구성원에 대해서는 징계·심의 요구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실제로 보수정권 시절 KBS 경영진은 공정방송 여부를 감시하려는 기자들을 징계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부 성명을 삭제하거나,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사내 언로를 막았다. MBC 역시 보도국장이 민실위 보고서를 찢어버리는 등 공정방송을 위한 노력을 노골적으로 묵살한 전력이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공정방송을 막는 인사에 대한 종사자들의 강력한 견제가 기대되는 이유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무제한이던 방송사 노동시간이 주 68시간(내년 7월부터 5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장시간 노동근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런 점에서 주 40시간 노동을 제작환경 개선의 원칙으로 합의한 것도 의미가 있다. 노사는 구체적으로 제작시스템 개선, 불필요한 업무 관행 폐지, 적정 인력 확보 노력 등에 합의했는데, 일견 선언적 제안으로 보이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논의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 이견이 가장 컸던 분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제작환경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논의의 초석을 깔아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죽도록 일하다 진짜로 죽는’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사전 제작환경 협의’를 의무화한 점은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사실 식사시간과 이동시간을 빼면 쉴 틈이 없고 촬영하면 바로 방영해야 하는 ‘생방송 드라마 체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드라마 촬영 중에 스태프가 사망하거나 큰 사고를 당하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제작 전 방송사 책임자와 제작사 대표가 스태프와 촬영시간, 휴게시간 등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도록 한 합의는 종사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방송사 인력 구조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구두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의 날인 3일 “지난 10년간 국민들은 우리 방송의 공공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참담하게 바라봐야 했다”면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흔들림 없이 바로 세워달라”고 강조했다. 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을 함축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지상파 방송 4사의 산별협약 체결에 더욱 기대가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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