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으로 옮겨 온 아프리카 대륙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몇 년 전에 들은 얘기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외교장관이 방한해 한국 외교장관과 만찬을 했다. 한국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원조와 투자를 확대하고 인프라 건설을 하고 있지만, 본국에서 인력을 데려오고 각종 장비도 중국 것만 사용하는 등 자기들 잇속만 차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장관이 중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국도 아프리카에서 개발원조(ODA)사업을 적극 펼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처럼 자기 잇속만 챙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듣고 있던 아프리카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을 비판하지 마세요.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을 때 오직 중국만이 도움을 줬습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혈맹과도 같은 나라입니다.” 그는 1960년대 독립한 뒤 폐허 상태이던 자기 나라에 중국이 해마다 의사 10명씩을 파견해 주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수십 년 째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예기치 않은 반론으로 회담장 분위기가 싸늘해졌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필자는 몇 년 전의 이 일화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원조를 구실로 아프리카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등의 비판에 이어 최근에는 중국이 경제협력으로 제공하는 저리 차관과 인프라 건설 비용이 결국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빚방석에 앉히는 격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 스스로 중국을 필요로 하고 환대하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베이징의 외국인 모임에 가보면 서방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아프리카인들 중에는 진심 어린 친중파(親中派)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유대 관계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중국이 ‘죽의 장막’을 치고 있던 시절부터 베이징에 드나들며 평생 차이나 워처(China watcher)로 살아온 일본 전문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960년대 천안문 광장에 가보면 외국인 10명 중 9명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유학생 기숙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중국이 1971년 유엔에 복귀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엔에선 초강대국 미국이나 아프리카 신생국가나 모두 한 표다.”


1963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최초로 아프리카를 방문한 이래 중국의 국가 수뇌부가 아프리카를 찾은 횟수는 100 차례에 육박한다.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의 주창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집권 6년여 동안 아프리카를 네 차례 방문했다. 1년 반에 한 번씩은 불원천리 아프리카를 찾았다는 얘기다. 덩치 큰 아프리카 대륙의 리더급 국가만 간 게 아니다. 지난 8월 순방 때에는 인구 120만의 소국 모리셔스를 찾아갔다.  


시진핑의 생각은 지난 6월 중앙외사공작회의 때의 발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발전도상국은 우리나라의 국제 업무에서 천연(天然) 동맹군들이다. 이들과 단결·협력의 대문장(大文章)을 써 나가자”고 말했다. 중국몽(中國夢), 즉 종합국력 1위의 강대국을 이루겠다고 공언한 시진핑이 그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을 확고한 우군(友軍) 세력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9월 초의 베이징은 아프리카 대륙의 수뇌부가 한꺼번에 옮겨온 듯한 분위기다. 지난 3일과 4일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정상회의에 54개 아프리카 국가 중 53개 국가의 국가수반이나 총리, 각료급 대표단이 찾아왔다. 시진핑은 중국과 아프리카는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하며 무상원조 150억 달러를 포함한 600억 달러(약 66조7500억원) 규모의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행보를 신(新)조공 외교나 신패권 외교라 비판한다.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프리카 53개국의 정상급 인사가 베이징으로 달려온 게 차이나머니의 위력만으로 이뤄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식민 지배와 내전, 부족 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에 수십 년째 꾸준히 의사를 보내주고, 14억의 통치자가 체통 안 따지고 인구가 1000분의 1도 안 되는 소국까지 찾아가면서 쌓아올린 공든 탑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게 중국이 그랜드 국가전략을 한 발 한 발 실천해 나가는 방식임을 우리는 꿰뚫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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