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지난 5월부터 두 달간 연재한 ‘노동orz’ 기획은 사회부 기자 여럿이 한 달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의 기록이다. 한겨레21 기자들이 ‘시급 4천원’ 인생을 체험했던 ‘노동OTL’ 이후 9년. 바뀐 것 없이 더 왜소해지기만(orz) 한 노동자들의 삶이 한편의 문학과도 같은 기사와 웹툰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기자들은 고된 노동이 끝나면 한 장면이라도 잊힐 새라 꼼꼼하게 취재일지를 적었고, 한 뭉치씩 되는 일지를 받아든 작가는 이를 신문 한 페이지짜리 만화로 그려냈다. 지난 7일 서울 시내의 카페에서 만난 이재임<사진> 작가는 “취재일지가 문학 같았다”고 기억했다.
이 작가는 ‘노동orz’ 연재에 참여해 다섯 편의 웹툰과 여러 장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다소 벅찰 수 있는 긴 호흡의 체험형 르포기사는 만화라는 장르를 만나 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접점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 작가는 만화적 욕심을 줄이는 대신,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된 취재일지 속 거친 노동현장을 “최대한 담백하게 번역”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취재일지는 더없이 꼼꼼했고, 기자들이 몰래 찍어서 건네준 사진도 있었지만, 현장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일정 부분 ‘상상’의 영역이었다. 이 작가는 “공간과 사건을 시각화 하는 것과 더불어 정서적인 측면을 드러내려고 했다”며 “기계, 설비, 사업장의 구체적인 풍경과 더불어 그 공간이 자아내는 정서를 상상하고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네 명의 기자들이 기록한 취재일지 속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화예술계 출신 노동자들을 만나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도 예술전공자로서 공장에서 일만 안 해봤을 뿐,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곧 그쪽으로 가겠지” 막연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며 ‘쓰리잡, 포잡’을 뛰던 시절, 아르바이트 하러 가면 ‘재임아’로, 만화를 그릴 땐 ‘작가님’으로, 일과를 마치고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 상영회에 가면 ‘감독님’으로 불리며 “깍두기처럼” 살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학원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고, 파트타이머 만화가처럼 일한다. 주로 그리는 것은 노조 소식지나 선전물이다. 지난해에는 빈곤사회연대의 부양의무제 폐지 캠페인 일환으로 한겨레21에 ‘들어봐 나의 몫소리’를 그렸고, 지금은 사회진보연대가 펴내는 잡지 ‘오늘보다’에서 ‘단결툰’을 연재하고 있다. 사회성이 짙은 작업들의 배경에는 사회활동과 예술의 결합을 추구했던 대학 동아리 ‘돌곶이 포럼’에서의 경험이 자리한다.
이 작가가 취업 준비를 하는 것도 우선은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장기적으로는 작업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노동orz’ 작업 때도 그랬지만 “직장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공부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공부의 결이 다른데, 이걸 어떻게 병행할 수 있나, 그러면서 물론 금전적 고민도 같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 할 작업들도 지금까지 관심뒀던 분야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영상이든,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매체의 구분을 두지 않고, 긴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