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걱정과 함께 여러 담론들이 펼쳐진다. 본질[本質]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그 자체이도록 하는 고유한 성질”이다. 비슷한 말로 본령[本領]이 있는데 이는 “근본이 되는 강령이나 요점”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저널리즘의 본질>이라 일컫는 건 본질과 본령을 포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저널리즘의 본질을 논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본질과 본령을 타 주체가 정해서 내려 보내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공산주의 국가의 통제체제이거나 군부정권 등의 권위주의 통치체제에서만 가능하다. 자유진영 국가라 해도 저널리스트들이 모여 합의를 통해 선언과 규약으로 이뤄진 본령을 만들고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근접한 것이 기자협회의 강령일 것이나 변호사회처럼 통제와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결국 본질과 본령은 저널리즘을 구성하는 우리들이 역사 속에서 체득하고 내면화해 응축시킨 무엇이다. 선배들이 피땀으로 쌓아 온 것이고 그것을 계승하려는 후배들의 결의가 본질과 본령을 이룬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저널리즘의 역사는 굴종하고 눈치 보며 지낸 시간이 훨씬 더 길기에 <저널리즘의 본질>은 응축해내지 못했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 저널리즘은 뿌리 없이 떠돌고 그 혼란은 몇 번의 시민혁명을 치른 지금도 이어진다.
이제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정하는 게 소위 ‘레거시 미디어’에 속한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저널리즘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일부분이어서 스스로 본질과 본령을 결정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언론사’라는 레거시 미디어 조직도 저널리즘의 본령에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의 본질>을 누가 규정하고 실천을 감독할 건가? 내친 김에 <시민미디어><미디어시민>에게, 팟캐스트와 유튜브에게도 묻자. 당신들은 생존과 이익에만 연연해 본질과 본령을 외면하는 구태를 확실히 벗어던질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브랜드 저널리즘’은 어떨까? 청와대에도 대기업에도 따져보자. 당신들의 ‘브랜드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으로서 본질과 본령을 갖고 있는가?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키자>는 작금의 주제는 이처럼 혼란스럽다. 본질과 본령을 응축시켜 품지도 못했는데 변질되지 않도록 지키라 한다. 이제라도 만들어 볼까 했더니 그럴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그 자격과 권한은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지금 우리는 이런 변곡점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해 새로운 저널리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살아 있으니 변화하는 게 아니라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것이고 그 변화가 시대와 시민의 요구에 합당해야 저널리즘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레거시 미디어>는 핵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금껏 궁구해 온 저널리즘 철학과 윤리, 책임의식이 디지털 시대 새로운 <저널리즘의 본질>을 만들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