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접근

[언론 다시보기]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영화 <미쓰백>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지은(김시아 분)과,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상아(한지민 분)가 교감하고 연대하고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아저씨가 소녀를 구하는 서사가 발에 차이는 세상에서, 상아와 지은이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고도 치열하게 다가가는 <미쓰백>은 특별하다. (상영은 거의 종료되었으나 VOD 등을 통해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가정폭력은 지은처럼 아동과 양육자 관계 뿐 아니라 배우자 사이, 형제자매 사이, 친족 사이에서도 벌어지며 그 양상은 신체적 폭력, 성폭력, 정서적 학대(폭언이나 가스라이팅), 금전적 통제, 방치 등으로 다양하다. 가정은 언제나 험난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공간으로 표상되기에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착취는 은폐된다. 우리 사회는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유난히 둔감하고 관대하다. 영화에서 지은은 상아가 경찰서에 데려가려고 하자 거부한다. 스스로 경찰서에 찾아갔던 지은을 경찰들이 “훈육도 적당히 하시라”며 집에 돌려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학대의 흔적을 훈육이라고 부를 때, 피해자는 원인 제공자가 되고 폭력은 필수적인 것으로 둔갑하며 가해자의 책임은 증발한다. 영화 속 가정폭력에 대한 안일한 태도는 법원과 경찰이 가정폭력 상습범을 풀어줬다가 결국 아내가 살해 당하는 현실 그 자체이다. 인터넷에는 가정 폭력 때문에 신고했을 때 경찰이 가해자에게 공손하게 ‘폭력의 수위 조절’을 권하거나, 감히 집안일에 참견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피해자를 훈계하면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던 사례가 가득하다. 폭력이 아닌 ‘가정’에 방점을 찍는 국가와 치안 시스템은 가해자에 이입하며 피해자를 방치한다. 결과적으로 가정폭력을 부추긴다.


오랫동안 가족 살해를 ‘동반 자살’로, 가정폭력 가해자를 ‘가장’, ‘전 남편’, ‘비정한 모정’ 등으로 불러온 언론 역시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동학대범을 보도할 때 ‘괴물’, ‘인면수심’ 등의 단어를 쓰거나 비혈연 관계를 강조하는 접근 또한 주의해야 한다. 이는 가정폭력을 타자화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본질을 지운다. 가정폭력범은 사이코패스나 동화 속 악인들 같은 비혈연 관계 구성원들만이 저지르는 예외적인 범죄가 아니다. 밖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선량한 개인이 가정 내의 약자에게는 누구보다 가혹할 수 있다. 폭력은 소유와 지배를 확인하는 절차이고 가정 내에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릴 때 보던 드라마에서는 툭하면 남편에게 맞아서 멍이 든 여자들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거나 눈두덩이에 달걀을 문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종아리가 터질 때까지 맞은 자녀가 울다 잠이 들면 부모 중 하나가 울면서 약을 발라주었다. 그런 일들이 일상적인 해프닝, 자식을 키우다보면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처럼 그려졌다. 가해 사실보다 가족이라는 정체성이 먼저였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나 훈육으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폭력은 폭력이다. 더 이상 사적 영역의 폭력을 타자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해석할 새로운 감수성과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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