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에 대한 기대와 우려

[글로벌 리포트 | 베트남]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미중 무역전쟁으로 각국 경제에 구름이 낀 요즘, 베트남은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6.8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3분기까지 7%에 육박하는 높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수출도 3분기까지 작년 대비 11.2%나 증가했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사상 최고치가 예고된 상황이다.


배경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인구 1억의 거대한 시장, 평균연령 30세의 젊고 풍부한 노동력, 높은 교육열 등을 바탕으로 한 성장잠재력이다. 또 미중 교역갈등,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반사이익도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베트남의 정치적 안정이다. 정치적 안정 없이는 아무리 젊고 저렴한 풍부한 노동력도 소용 없다는 사실은 베트남 주변 여러 나라에서 확인된다.


공산당 일당 체제인 베트남의 권력은 분산돼 있다. 집권여당 대표에 해당하는 당서기장을 정점으로 국방과 외교를 책임지는 국가주석(대통령), 국내 행정을 총괄하는 총리, 입법기관인 국회를 이끄는 국회의장 순으로 4명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들에 비할 바 아니지만, 권력 분점을 통해 일정 수준의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정부패 문제도 베트남의 경우 ‘용인할 수 있는 수준’ 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 최근 큰 변화가 생겼다. 지난 9월 타계한, 권력서열 2위의 쩐 다이 꽝 국가주석 후임으로 권력서열 1위의 응우옌 푸 쫑(74) 공산당서기장이 지난달 국회에서 최종 선출됐다. 4명이 나눠 가졌던 권력을 3명이 갖게 됐고, 그것도 최상위 권력 두 자리를 한 사람이 차지하게 됨으로써 그 균형은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물론, 호찌민 전 주석이 국가주석과 총리를 겸했고, 당서기장 또는 당대표에 해당하는 ‘베트남공산당주석’직도 같은 시기에 지낸 기록으로 보면 ‘권력 집중’이 근대 들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호찌민 전 주석의 경우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항불전쟁에 이어 미국과도 전쟁을 치러야 했던 국가적 특수 상황,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라도 집중된 권력이 필요했던 시점의 지도자였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권력 집중과는 차이가 있다.


막강한 권력의 탄생에 베트남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쫑 서기장은 고도의 정치력으로 재선 제한 연령(65)의 예외 규정을 인정받아 2016년 당시 정치적 라이벌인 응우옌 떤 중 총리의 도전을 물리친 인물이다. 그가 이후 대대적인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며 권력 기반을 다져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부패척결을 내세운 정적 제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 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실제 베트남 국회는 지난 6월 ‘사이버보안법’을 제정,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하면서 공안 등 당국의 소셜미디어 활동에 대한 감시를 예고해놓고 있다. 잘못된 정보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기업에 베트남 이용자들의 데이터 저장을 의무화하고 있는 만큼 반국가·체제 활동 단속 등을 이유로 광범한 사찰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우려의 핵심이다. 응우옌 만 훙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말 국회서 하루 1억개의 온라인 정보를 검색해 분석, 평가, 분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센터를 구축했다고 밝힌 상태다.


당서기장의 국가주석직 겸직에 대한 기대도 관찰된다. 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정운영 효율을 높이고, 대외 협상력을 키워 국제무대에서 베트남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을 맡게 되는 2020년을 도약 원년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일찌감치 시작된 베트남 정부의 치밀한 준비에 내년 의장국을 맡게 될 태국의 노력이 무색해질 지경이라는 게 태국 외교가의 분위기다.


중국과 프랑스를 물리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베트남은 현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한 ‘스트롱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뛰었던 호찌민 전 주석과 같은 영도력을 가진 지도자에 대한 갈증의 표출일 수 있겠다. 모처럼 맞은 번영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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