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 극우 후보 승리의 의미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대선이 극우로 분류되는 사회자유당(PSL) 후보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승리로 끝났다. 1차 투표를 거쳐 지난달 28일 결선투표에서 좌파 후보를 누르고 새 대통령에 당선된 보우소나루는 새해 1월1일부터 4년 임기를 시작한다.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처한 보우소나루가 일으킨 극우 돌풍은 대선과 함께 치러진 연방의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그가 속한 사회자유당은 하원의원 52명을 배출해 56명의 당선자를 낸 좌파 노동자당에 이어 하원(전체 513석) 제2당으로 떠올랐다. 상원(전체 81석)에서도 창당 이후 처음으로 4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했다.
대선 결과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잇따랐다. 브라질 사회를 수년째 뒤흔든 부패 스캔들과 고질적인 치안불안,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등이 13년간 계속된 좌파 노동자당 정권의 퇴진을 불렀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주장이다. 광범위하게 형성된 반(反) 노동자당 정서를 간파해 소셜미디어(SNS)를 앞세워 가장 신랄하게 노동자당을 비판한 보우소나루의 전략이 먹혀 들었다는 분석도 그럴 듯 하다.
중남미 18개국의 민주주의 성과를 해마다 평가하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 소재 싱크탱크 라티노바로메트로(Latinobarometro)의 마르타 라고스 소장은 좀 더 근본적인 요인을 짚었다. 부패 스캔들이나 노동자당에 대한 반감보다는 자신의 생활 여건에 만족하지 못한 브라질 국민이 보우소나루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소외감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며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던 서민들이 좌파 룰라 정권(2003~2010년)을 거치며 생활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아직도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노동자당에 등을 돌리고 보우소나루를 찍었다는 얘기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것도 중남미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지도자로 불리는 보우소나루의 등장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라티노바로메트로의 최근 조사에서 브라질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는 10%에 그쳤다. 우루과이(61%)나 아르헨티나(59%)와 비교하면 비정상적으로 낮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하락은 정치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사회의 작동 기반을 붕괴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라고스 소장은 말했다.
브라질에서 우파 정권이 탄생하면서 중남미 지역의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브라질 대선 결과로 지난 20여 년간 중남미 대륙을 휩쓴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의 퇴조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라질과 함께 중남미의 맹주를 다투는 멕시코에서 올해 말 89년 만에 좌파정권이 출범한다는 사실은 좌파에 버팀목이 된다.
과거와 달리 중남미에서 좌파 또는 우파로의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부터 중남미 각국에서 치러진 대선 결과를 봐도 그렇다. 지난해 12월 칠레 대선으로 정권은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로 넘어갔다. 올해 4월 대선을 치른 코스타리카에서는 중도좌파 정권, 파라과이에서는 중도우파 정권이 유지됐다. 강경 좌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5월 대선에서 임기 연장에 성공했다. 6월 콜롬비아 대선에서는 정권 성향이 중도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브라질·콜롬비아·파라과이·파나마·과테말라·온두라스를 우파 정권으로 분류한다. 아르헨티나·칠레·페루·아이티는 중도우파, 우루과이·에콰도르·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은 중도좌파에 가깝다. 베네수엘라·볼리비아·니카라과·엘살바도르·쿠바는 좌파 정권이다. 멕시코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좌-우파 정권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모습이다.
중남미에서 브라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에 몇 가지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남미국가연합을 통한 지역통합 노력은 상당 부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좌파 정권 때문에 메르코수르가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됐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남미지역 최대 국제기구인 남미국가연합은 존립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남미판 유럽연합(EU)’을 내건 남미국가연합은 지난 2008년 좌파 정상들이 주도해 창설됐다. 친미(親美) 보우소나루가 남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지역통합을 지향한다는 목표를 내건 남미국가연합이 달가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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