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대표 딸'의 폭언만 남은 보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TV조선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한 방정오씨 딸의 폭언 음성이 인터넷을 달궜다. MBC가 첫 보도를 하고, 미디어오늘이 후속으로 내보낸 음성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10살 초등학생이 50대 후반의 운전기사에게 내뱉은 안하무인식 언어는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아저씨 진짜 해고될래요?” “네 모든 식구들이 널 잘못 가르쳤네” “죽으면 좋겠어” 같은 발언이 음성 그대로 보도됐다. 평범한 초등학생이 아니고, 거대 언론사 회장 일가의 손녀였기에 발언이 더 폭발력을 가지고 확산됐다. 사람들은 재벌가의 갑질로 받아들였다.


천천히 따져보자. 이번 보도의 본질이 무엇이었나. 회삿돈으로 가족 운전기사의 월급을 지급해 배임과 횡령을 저질렀을 정황이 짙다는 점,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해 법을 위반했는지가 초점이었다. MBC 뉴스데스크 해당 리포트 제목은 <허드렛일에 폭언까지…나는 머슴이었다>였고, 인터넷뉴스의 제목은 <구두 닦고 자녀 학원 등원까지…폭언 항의하자 해고>였다. MBC는 집사처럼 운전기사를 쓰고, 맘대로 해고하는 행태를 고발하면서 방정오씨 딸의 음성을 일부 내보냈다.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 사장 손녀, 운전기사 ‘폭언’ 녹취록 공개> 기사와 함께 1분40초 분량의 음성파일을 공개하며 초등학생의 막말에 집중했다. 뉴스를 접한 독자들은 10살 아이의 폭언에 꽂혔고, 그사이 방씨의 배임과 횡령 혐의, 운전기사의 ‘갑질’ 피해는 사라졌다. 거대 언론사 일가의 특권의식과 갑질을 비판하는 도구로 미성년자의 음성은 소비되고 말았다. 녹취한 아이의 말을 정리해서 보여줘도 되는데, 굳이 자극적인 음성을 공개하는 것은 분명 지나쳤다.


사회 기득권층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꼬집는 보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어린이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신분과 무관하게 적용돼야 한다. 언론 보도라고 예외일 수 없다. 흔히 접하는 재벌가 성인 자녀의 갑질과 구분해서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일부에서는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본다는 반론도 있다. 10살 아이의 행태를 통해 상류사회의 뿌리 깊은 특권 의식과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그들의 문화를 폭로하는 일이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방정오씨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보도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 이제 끝났는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가 반성했으니 모든 게 끝났는가. 방씨는 대국민 사과문을 내면서 자식의 폭언엔 반성했지만, 부당해고와 배임 혐의엔 입을 다물었다. 정작 보도의 본질은 사라져버렸다. 재벌가에서 흔히 쓰는 ‘꼬리자르기’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딸의 허물을 감싸 안은 ‘부정(父情)’만 남아버렸다. 며칠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조선일보 일가를 향한 성난 화염은 식어버렸다. 보도가 거대 언론의 위법적인 행태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사안을 다뤘더라면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졌을지 모른다. 아쉬움이 남는다.


대중의 관심이 큰 뉴스는 더 깐깐하고 엄밀한 잣대로 보도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특히 인권이 침해될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개인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소수자나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번 방정오씨 딸의 폭언 음성 공개 논란이 이대로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언론이 비슷한 보도를 할 때 반면교사로 삼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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