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챙총'과 '외국인'에서 한 걸음 더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칭-챙-총.” 검정 옷을 입은 청소년이 짤막한 단어를 내뱉으며 지나갔다. 나와 아이가 마트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들릴 듯 말 듯 귀에 들어온 소리였지만, 분명 칭, 챙, 총이었다. 핀란드어에는 저렇게 짧고 빠르게 발음하는 파찰음이 없다. 그 청소년이 우리 외모를 보고 한눈에 ‘청나라 후예’임을 알아채고 중국어 단어로 칭(淸) 혹은 총이라 했을 리도 없다. 저 말은 정확히 우리가 그 옆을 스치던 순간에 나왔다. 손잡고 장 보러 가던 나와 아이를 향해 그 청소년은, 말하자면 ‘눈 찢어진 동양인 자식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웃어넘길까, 싶다가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를 보고 다른 마음이 들었다. 저 아이와 그 친구들은 앞으로도 내 아이와 또 다른 동양계 친구를 ‘칭챙총’ 이라 부르며 비하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물론 대다수 학생은 그 단어의 의미도 모른 채 그저 놀리는 의미로 써먹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칭-챙-총(ching-chang-chong)이나 칭-총(ching-chong)이란 단어는 뜻이 없는 말이니까. 주로 중국계 미국 이민자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애초에 중국어 억양을 과장해 만든 은어일 뿐이다. 핀란드 청소년이 어디선가 배운 그 단어를 쓰면서 무슨 대단한 의미로 썼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단어가 외형이나 출신, 문화나 언어를 이유로 누군가를 비하하는 명백한 차별 발언이라는 점이다. 대화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무시하고 괴롭히는 데 쓰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언어습관이 반복되면 차별은 습관이 될 테고, 아마도 끝내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아내에게 맡긴 뒤 그 청소년에게 달려가 불러세웠다. “안녕. 방금 나와 아이에게 칭챙총이라고 한 거 맞아? 너 핀란드인 맞지? 우린 한국에서 왔고, 이 도시에서 너와 같이 살고 있어. 나는 여기서 일하고 공부하고, 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녀. 내가 너의 부모를 핀란드인이라고 놀린 적 없어. 그리고 앞으로 너와 네 친구가 내 아이에게 그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분명 좋지 않은 표현이야.” 더 명확한 생각을 전달하기에 내 핀란드어는 엉성했지만, 나는 내가 그 학생의 마지막 ‘칭챙총’이길 바랐다. 물론 또 어디선가 그 단어를 듣는다고 해도 놀라진 않으려 한다.


지난 11월13일, 인천 연수구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중학생 A도 겉모습이 또래와 달랐다고 한다. 고려인계 러시아인 모친 영향으로 다소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가졌을 뿐 체구가 조금 작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처럼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른 아이를 또래 청소년이 ‘외국인’이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외국인’이라는 단어 자체는 너무 평범한 모습이지만, 이를 쓰는 사람은 상대의 핏줄, 부모의 직업, 생활 환경과 소득 수준,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의 처지와 형편까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짱깨, 쪽바리, 깜둥이, 흑형 등 다양한 차별 표현을 우리는 매일같이 쓴다. 발달장애인이나 노동자는 또 어떤가. 고민 없이 쓰거나 반대로 쓰지 않으려는 표현도 적지 않다.


한국 언론은 앞으로도 ‘혐오와 차별’이 근간에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안전한 터전을 찾아 한국에 온 예멘, 이집트 난민 관련 현안, 또 탈북자, 화교, 이주 노동자처럼 이미 사회적 일원이 된 부류를 취재할 일은 지금도 적지 않다. 당장 핀란드처럼 중고등학교 정규 과목에서 종교나 인종 문제를 깊이 있게 배울 기회가 없으므로, 언론은 ‘외국인’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의식을 길러줄 수 있는 교재다. 그래서 인천 중학생 사건이 단지 ‘러시아계 혼혈아’ 집단폭행 사건으로 끝나선 안 된다. 또 다른 칭챙총이 있다고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차별과 혐오 방지 차원에서 더 깊이 있게 취재해 주길 기대한다. 여기에나마 기록하자면, 인천 중학생 실명은 평범한 한국식 이름이다. 국적은 대한민국. 우리는 왜 이 학생이 고통을 받아야 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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