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영국 의회 청문회서 규제 필요성 인정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지난달 29일, 영국 의회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 위원회가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아일랜드, 라트비아, 싱가포르, 프랑스, 벨기에 등 8개국 의회대표를 초청해 페이스북을 상대로 국제 청문회를 런던에서 열었다.


영국 하원은 청문회가 열리기 5일 전, 페이스북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기업 식스포쓰리(Six4Three)로부터 페이스북의 내부 문건 일부를 넘겨받으며 회심의 일격을 준비해 왔다.


식스포쓰리는 2015년 페이스북에서 25만달러를 투자한 자사의 앱이 삭제되자 페이스북을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법정에서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캐시(컴퓨터 고속 장치)를 증거로 들어 페이스북이 적극적으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착취하는 한편 (캐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입증했듯이) 제3자가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허술한 구멍’이 플랫폼 상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은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초 법정에 제출한 서류 일반은 공개하지 않는 데 동의했지만 영국 하원은 런던으로 출장 온 임원에게 자료를 넘기지 않을 시 벌금형뿐만 아니라 구류까지 가능하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데미언 콜린스(Damian Collins) 영국 하원의원은 식스포쓰리의 문건을 조사한 결과, 2014년 10월에 페이스북의 한 엔지니어가 회사 측에 “러시아의 IP 주소들로부터 하루에 300억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 측정점)에 대한 접근이 관찰된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러시아의 IP 주소들이 페이스북의 플랫폼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끌어내렸다면 그것이 보고되었을 텐데 당신들 내부적으로만 보관하고 공론화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며 페이스북 조직 내부에서 이 사실을 은폐해 온 것은 아닌지 질문했다.


이날 페이스북은 위원회의 출석 요청에 불응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대신해 회사의 ‘유럽 대표’를 내보냈다. 대신 참석한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 경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자유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을 지내고 2009년에 종신 귀족(life peer) 직위까지 얻은 그야말로 엘리트 정치인.


2009년 6월부터 페이스북의 정책 해결 분야에 영입돼 현재 부회장직까지 올랐다. 옥스퍼드 인터넷연구소의 초청 연구원으로도 활동하는 디지털 분야의 전문가지만 콜린스 하원의원의 날카로운 질문에는 “사실을 호도할 수 있으며 공청회의 맥락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청문회에 온 다른 국가들의 대표들도 앨런 경을 상대로 질문을 쏟아냈다. 캐나다 대표로 온 찰스 앵거스(Charlie Angus)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페이스북이 심각한 수준으로 사기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며 “최선의 방법은 ‘독과금 금지(anti-trust) 조치”지만 “간단하게 규제하는 방식으로 페이스북을 해체하는 것 혹은 유틸리티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앨런 경은 “우리가 풀려고 노력하는 문제가 무엇이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회사 측을 변호했다. 이에 대해 앵거스 부위원장은 “진짜 문제는 페이스북이고 그 외 모든 건 그저 (그로부터 나오는) ‘증상’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프랑스의 대표 역시 페이스북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앨런 경은 “앞으로 회사는 학자들과 정보를 공유할 의지가 있으며 이를 통해 페이스북이 신뢰받을 만한 서비스라는 것을 학자들이 증명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뿐 아니라 학계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이어 그는 국제적 기준의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위원회의 입장에도 동의했다. 규제의 필요성을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국제 청문회의 의미가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