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수능이 끝나자 우리 언론들은 일제히 ‘불수능 비판’ 기사들을 쏟아냈다. <“출제자 나와”…역대급 불수능에 수험생들 분개>. 불수능을 사교육 부채질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기사’들도 눈에 보였다. <‘불수능’에 예비 고3도 ‘벌벌’…“사교육만 부추겨”>.
불수능이 눈치작전을 불러 올 거라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기사도 있었다. <‘대입은 전략싸움?’…‘불수능’에 치열해진 눈치작전>. 대개 눈치작전은 물수능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아닌가. 올해는 외국인의 논평도 활용됐다. <영어권 외국인도 혀 내두른 ‘불수능’…학교수업 무용론도>.
‘불수능 융단폭격’을 보며 든 생각은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였다. 올해의 비판으로 출제위원들이 ‘대오각성’해 내년에 ‘물수능’이 되면, 또 물수능이라 변별력이 없어 큰 문제라고 비판할건가. 독자들 보기에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입시가 정말 ‘불수능’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수능의 만점자는 9명이다. 시험의 난이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만점자가 수 십 명, 수 백 명씩 나와야 정상인 건 아니다. 오히려 시험은 만점자가 나오지 않는 게 적정 난이도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수능이 처음 시행된 1994수능부터 1998수능까지는 만점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9수능에서 처음으로 만점자가 1명 나왔고, 2000수능도 1명이었다. 2001수능은 66명으로 대표적인 ‘물수능의 해’로 기록됐지만, 2002~2007수능은 다시 0명이었다. 이후 2009~2018수능 10년 동안은 0명~33명 사이였다. 만점자가 9명 나온 올해가 정말 ‘비난 받아야 마땅한 불수능’인가.
필자가 속했던 학력고사 세대 당시에도 만점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수석도 340점 만점에 320~330점 정도였고, 300점만 넘어도 매우 좋은 성적이었다. 그래도 요즘처럼 모든 언론들이 ‘불수능’이라고 일제히 비판세례를 펴지는 않았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번 수능이 ‘불수능’이었다고 해보자. 그렇더라도 대다수 언론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비판논조였던 건 아쉽다. 몇몇 언론사는 그래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을까.
맹폭격을 받은 국어의 고난이도 문제도 그렇다. 물론 어렵긴 했지만, 융합적 지식과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였다. 평소에는 ‘융합적 사고’를 그렇게 강조하더니, 막상 그런 문제가 나오면 어려워서 안 된다고 하니 어쩌란 말인가. 그런 문제도 한두 개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언론은 왜 없나.
이제 언론은 불수능 물수능 비난공세가 아니라 과도한 시험 과목 축소, EBS연계, 수시편중 등 ‘내용’을 보아야 한다.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실수와 운’에 입시결과가 좌우되는 ‘부작용’을 다뤄야 한다.
‘비판’은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다. 하지만 내용과 별 관계없이 항상 비판 기사를 쏟아내는 건 ‘진짜 비판’이 아니다. 일부 국민의 감성에 편승하는 선정주의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