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회사는?" 블라인드 채용 비웃는 언론

한숨 유발하는 구시대적 면접관


“남자친구 있어요? 지금도 잘 만나요?” 지난해 서울의 한 일간지에 면접을 보러 갔던 A기자는 면접관에게서 황당한 질문을 들었다. 면접관이 남자친구 여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결혼 계획까지 꼬치꼬치 캐물었기 때문이다. A기자는 “남자친구랑 결혼할 건지, 나이가 있는데 결혼하면 기자 관둘 건지를 면접관이 연속해서 물어보더라”며 “성차별 질문인 것 같아 불쾌했지만 취업준비생 신분이라 내색하지도 못했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허탈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고 말했다.


올해 경력 이직을 위해 여러 언론사 문을 두드렸던 B기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B기자는 “기혼자라서 그런지 출산 계획을 물어본 곳이 2곳이나 됐다. 아이 낳고 계속 다닐 거냐, 언제까지 일할 거냐고 면접관이 노골적으로 물어봤다”며 “출산 계획도 없고 낳아도 계속 다닐 거라고 답하긴 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시대의 정론, 정필을 외치는 언론사가 정작 편견을 가득 담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언론사 채용 면접에서 직무 수행과 무관한 차별적 질문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언론사에서 면접을 본 이들은 임신·출산 계획이나 결혼여부를 묻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가족의 학력과 직업을 묻는 사회적 신분 차별, 출신학교명을 묻는 학력 차별 질문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전했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는 취업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위해 성별, 사회적 신분,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등을 이유로 구직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언론사 면접에선 이들 모두 쉽게 무시됐다고도 했다.


특히 지원자들은 노력으로 성취한 능력보다 타고난 배경에 더 관심을 보이는 면접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역 유력 일간지에 지원했던 C기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관이 ‘아버지 뭐하시냐’고 물어본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당시 그 회사가 모든 지원자들에게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을 했다고 들었다”며 “제 장점이나 경험 등 업무와 관련된 것들을 어필하기 위해 며칠간 모의면접까지 하며 많은 준비를 했는데 아버지 직업을 필두로 제가 바꿀 수 없는 성별이나 배경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인 채로 면접이 끝났다. 떨어지고 나서는 차라리 그런 회사 안 가서 다행이다 싶었다”고 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D씨도 올해 한 일간지에서 면접을 보며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만 수차례 받았다고 전했다. D씨는 “제대로 된 질문은 하나였고 나머지는 제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들이었다”며 “마지막에 출신학교를 물어보더니 제 답변은 아랑곳 않고 자기들끼리 그 학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면접자를 파악하려는 건지, 그냥 시간을 때우려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은 면접관들이 제대로 면접 준비를 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삼았다. 4년째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E씨는 “자기소개서도 안 읽고 들어오는 면접관들이 많다”면서 “이력서만 슬쩍 보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고 인턴 경력을 보고 ‘너 이 사람 알아?’ 수준의 질문을 하거나 ‘얼굴에 흉터야, 아니면 화장이 잘못된 거야?’ 같이 면접자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요즘은 일반 기업도 내부 지침을 마련하면서 조심하는데 언론사는 지적받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지 더 무감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실제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 언론 유관단체와 지상파 방송사 등 일부 언론사들은 국가직무능력표준(NSC)을 활용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불합리한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 등의 항목을 걷어내고 직무능력만을 평가하기 위해서지만 이런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KBS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과 함께 면접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학교나 출신지역, 여성의 경우 결혼이나 출산 유무 등을 질문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중재위원회도 성별, 용모, 결혼 및 가족관계 등의 질의를 금지하는 면접원칙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면접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언중위 관계자는 “면접관들이 면접을 실시할 때 감사과장이 배석하도록 하고 있다”며 “면접관들이 차별적인 질문을 하지는 않는지 별도로 살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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