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30분이 데드라인이니까 기사는 11시까지 마감해주세요.” 취재기자가 한밤 편집국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부리나케 기사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사건이 터졌을 테니 아마 정신없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거고, 문장을 만들면서 동시에 오탈자가 없는지도 점검할 것이다. 11시, 아니면 조금 더 늦게라도 기사를 전송하면 안도와 동시에 피로가 몰려올지도 모른다. 내일 나올 신문을 어떻게든 만들었다는, 그런 안도감 말이다.
그런데 기사 전송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그 때부터 일을 시작하는 이가 있다. 바로 편집기자다. 기자가 11시 마감 시간을 지켜 기사를 전송한다 해도 편집자에겐 고작 3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신문 지면이 완성되는 시간, 11시30분을 맞추기 위해 편집기자는 30분 안에 기사를 읽고 판단하고 제목을 달아야 한다. ‘내일까지 30분’이란 마음으로 편집기자는 그렇게 매일같이 시간과의 전쟁을 벌인다.
주영훈 조선일보 편집기자는 최근 그 30분 동안 편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책, ‘23시30분 1면이 바뀐다’를 썼다. 취재기자가 취재기를 펴내는 건 흔하지만, 편집기자가 신문이 편집되는 현장을 기록으로 남긴 건 드문 일이다. 주 기자는 “사실 취재기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며 “편집기자들은 이 책을 읽고 공감하겠지만 취재기자들은 잘 모르는 내용일 것 같다. 단순히 편집 얘기가 아니라 신문 제작 전반에 관한 얘기여서 신문을 잘 이해하고 싶은 기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1999년 한국일보에서 취재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여러 부서를 순회하던 그는 편집부 선배들의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에 편집부와 연을 맺었고, 2002년엔 조선일보로 적을 옮겨 당시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스포츠면 편집을 맡았다. 그러다 2006년 편집부장의 권유로 1면 편집을 담당하게 됐다. 주 기자는 “그때만 해도 1면 편집은 고참 편집기자가 맡았는데 당시 제 나이는 36살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젊어 어리둥절했는데 결과적으로 10년이 넘게 1면을 편집하게 됐다. 그동안 모신 편집국장만 7명”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은 그에게 불면의 밤이었다. 새벽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불규칙적인 수면으로 스트레스는 높아져만 갔다. 아닌 밤중에 발사되는 미사일과 트럼프의 트위터로 들썩이는 편집국에서 그는 매번 ‘달밤체조’를 했고, 혹시나 오보를 낼 수 있다는 두려움과 책임감 속에 신문의 얼굴인 1면을 편집했다. 주 기자는 “보통 편집에 정답은 없다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답은 항상 있었다”며 “편집자가 몰랐을 뿐이다. 그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편집이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신문에 대한 그의 애정은 누구보다도 크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아날로그주의자’를 자청하며 신문이 좀 더 신문다워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주 기자는 “디지털 퍼스트라지만 아직도 수백만명의 독자들이 신문을 읽고 있다”며 “기자들이 신문에 대한 애정을 잃고 스스로 신문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신문이 자기 색깔을 잃는다면, 신문이 신문답지 않다면 점점 더 신문을 볼 필요가 없어지게 될 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신문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줄지, 매일 아침 신문을 펴는 독자를 어떻게 놀래줄지 고민할 때 신문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