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계속 대한민국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 경제선임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상장 유지 결정은 ‘제2의 국민연금 사태’다.”


한국거래소가 10일 거액의 고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삼바에 대해 상장 유지 및 거래 재개 결정을 내린 직후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법과 상식에 어긋난다”면서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불공정합병에 부당하게 찬성함으로써 국민 노후자금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자초해 공분을 산 바 있다.


한국거래소의 결정은 불과 한 달 전 삼바가 4조5000억원대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금융위원회의 발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분식회계는 회계투명성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시장에는 암적 존재다. 한국거래소는 이런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줬다. 외환위기 직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20조원대 분식회계가 드러나 큰 충격을 던져준 이후에도 SK글로벌,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의 분식회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기업들에게 수천억원, 수조원의 분식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반면 선진국은 일벌백계의 엄벌에 처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500대 기업에서 16위를 차지하던 엔론의 2001년 분식회계 사태다. 엔론의 분식 규모는 1조6000억원으로 삼바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엔론이라는 기업은 사라졌고, 최고경영자는 2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회계감사를 맡은 아서 앤더슨은 해체됐다. 미국 기업들이 회계투명성을 유지하고, 투자자가 이를 믿고 마음껏 투자하는 것은 엄격한 법집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조처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삼바의 소수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전체 주식시장 투자자를 죽인 바보같은 짓이다. 


이번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삼성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tbs의 <뉴스공장>에서 “한국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삼성주의다. 삼성이 시장의 위에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국사회는 촛불혁명을 통해서 경영승계를 위해 국정농단 세력에 뇌물을 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이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이른바 ‘삼성공화국’의 망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점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 2017년 국정농단 세력에 뇌물제공, 2018년 삼바 분식회계 등 거의 매년 대형 스캔들이 터졌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명색이 글로벌 기업이 이렇게 매년 불법행위가 드러난 전례도 없지만, 그러고도 사회에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삼성과 대한민국이 함께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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