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적응법 '탄력근로·임금보전'… 장시간 노동은 여전

도입 6개월 접어든 상한 근로제

주 52시간 상한 근로제가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지난 7월1일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 근로시간 축소는 대다수 사업장에서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며 올 연말까지 6개월 동안 처벌이 유예됐지만 내년부터는 당장 단속과 형사처벌이 강해진다. 다만 정부가 최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며 처벌 유예 연장을 검토하고 있어, 계도기간은 또 한 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에선 지난 6개월간 근로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인력 투입과 업무 재조정이 근로시간 축소의 핵심 해결책이었지만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인력 투입보단 주로 업무 재조정이 논의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6월 토요판 폐지를 합의한 서울신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지난 6월25일 주 5일 발행을 골자로 하는 노사합의서에 서명하고 7월부터 토요일자 발행을 중단했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도 주말판 별도 제작으로 주말과 평일 인력을 이원화하며 일찌감치 주 5일 근무 실험에 들어갔고 경향신문, 조선일보도 업무체계 자체를 바꾸는 선까진 아닐지라도 야근 시 다음날 오전 근무 오프를 최대한 보장시키는 문화를 정착시키며 근로시간 축소에 대비했다.



상당수 언론에선 탄력근로제가 적극 도입됐다. 당초 법 취지와 맞지 않지만 언론과 기자들의 업무 현실이 고려되며 큰 갈등 없이 수용됐다. 다만 단위기간 평균 근로시간을 계산하는 등 언론계에서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연합뉴스는 지난 8월 2주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는 방안에 노사가 합의했다. 2주 단위 탄력근로제 하에서 1주에 최대 60시간까지 근무를 하면 나머지 1주는 44시간만 일하면 되는 식이다. 연합뉴스 노사는 또 예정에 없던 취재 등 돌발 상황을 고려해 각 부서별로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별도의 서면 합의를 통해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일보도 이달 초 노사가 1개월에서 최대 3개월까지 탄력근로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추가근무를 했다면 1개월 혹은 3개월 안에 대체휴가를 모두 쓰게 하는 방식이다. 강제조항도 마련했다. 부서장을 통해 대휴 실시 현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3개월까지도 대휴를 쓰지 않으면 부서장에게 승진 시 불이익을 준다는 조항을 넣었다.


노용택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은 “강제조항을 둬서 기자들이 무조건 휴가를 소진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임금 손실이 없도록 포괄임금제 형식으로 주던 시간 외 수당도 유지하기로 했다. 또 최근 금요일에 쉬게 되면서 일요일 근무가 고착화됐는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일당 2만원을 가산하는 조항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처럼 임금 손실을 막기 위한 언론사들의 고민도 치열했다. 임금 보전을 위해 중앙일보처럼 연차별로 40~60만원의 제작수당을 지급하는 등 수당을 신설하거나 아예 포괄임금제 기반의 수당체계를 시급제로 바꾼 곳들도 있다. 정확한 근무 시간 준수가 필요한 주 52시간제의 취지와 포괄임금제가 맞지 않아서다. 연합뉴스는 근무체계를 개편하며 포괄임금제 형식의 상시연장근로 수당제도를 폐지하고 실제 일한 만큼 보상받는 시급제로 수당제도를 재편했다. 이에 따라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평일에는 시간당 1만2000원, 휴일에는 시간당 2만1000원을 지급하고 야간에는 여기에 시간당 7000원이 더해지게 됐다.  


경향신문도 지난 9월 포괄임금제 기반의 연장·야간 수당을 시급제로 바꿨다. 평일 연장근로는 시간당 9000원, 밤 10시 이후 야간근로엔 50%를 가산해 시간당 1만3500원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경향신문 노조 관계자는 “주 5일 근무가 되면서 주말을 쉬게 되니 휴일근무수당이 줄어들었다”며 “임금 보전을 위해 수당 액수를 계속 넓히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근로자 동의 아래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축소에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일부 기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한 기자는 “데스크가 누구냐에 따라, 부서가 어디냐에 따라 근무시간이 천차만별”이라며 “저 같은 경우 업무량이 전혀 줄지 않아 퇴근 후나 주말에도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실상 대체휴일을 강제 소진당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토요판을 폐지해 업무량 자체를 줄여버린 서울신문에서도 여전히 일부 기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신문 노조는 지난 11일 노보에서 10월 편집국 부서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집계하며 “한 달 동안 사원들이 등록한 근무 시간을 보면 대부분은 주 52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일부 기자들은 불법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전체 사원 중 10월에 2주 이상 주 52시간을 넘게 일한 사원은 총 5명으로 모두가 편집국 소속이다. 전담 인력 없이 취재기자들이 일상 업무와 섹션 업무를 병행하는 식으로 운영되면서 일에 쫓긴 기자들이 휴일에 섹션 기사를 쓰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부작용이 속출하는 상황인데도 대부분의 언론사에선 수당체계는 차치하고서라도 근무시간을 어떻게 단축할지 제대로 된 합의안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주 5일제, 야근 후 오프 등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후에 손을 놓고 있는 곳들이 다수다. 정남구 한겨레 노조위원장은 “본격 시행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회사가 움직임이 없다”며 “노조에 협상을 요청하는 것도 없어서 근로시간 단축이 잘 지켜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한 노조위원장도 “내년 2~3월은 돼야 새로운 법률 개정이 이뤄질 것 같다”면서 “처벌 유예도 연장되는 상황이라 회사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같다. 노조 입장에서도 굳이 무리해 결론을 도출하는 건 손해라 사측 안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처벌 대상이 사주이기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건 노조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약속한 노동 정책이 계속 늦어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장형우 서울신문 노조위원장은 “정부의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일과 삶의 균형인데 근무시간 단축과 관련해선 벌써 처벌을 1년 유예해야 한다거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며 “지난 7월 시행에 맞춰 열심히 정책을 따른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인센티브도, 페널티도 없이 정책을 이렇게 시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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