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에 맞닥뜨린 시련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베이징의 2018년 연말은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일색이었다. 천안문 광장의 인민대회당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 이하 국가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성대한 경축 만찬 및 공연과 기념식, 그리고 당대 최고급 배우들이 출연해서 만든 영화 시사회가 차례로 거행됐다. 각종 매체는 연일 개혁개방 40년의 성과를 자랑하는 특집 프로그램과 기사로 도배되었다. 최고지도자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대한 자부심으로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 40년간 일어난 변화를 돌아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할 무렵의 중국은 당시 인구 8억의 먹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한 빈곤 국가였다. 웨이젠궈(魏建國) 전 상무부 부부장(차관)이 “1984년 방중한 오마르 봉고 가봉 대통령의 선전(심천)특구 시찰을 수행했는데 그때만 해도 가봉이 중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았다”고 회고한 대로다. 그런 나라가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40년 만에 초강대국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성장했으니 중국인들의 프라이드가 넘쳐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개혁개방의 설계자이자 집행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들고 나왔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중국에서는 낙후된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게 선결 과제였고 고양이의 색깔이 검은지 흰지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덩샤오핑은 100년은 가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시진핑의 중국은 이를 40여년 만에 압축달성하고 사회주의 초급단계를 벗어날 시기가 다가왔다고 본다. 그게 바로 덩샤오핑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시진핑 시대가 열렸다는 새로운 시대구분법이다. 개혁개방 40주년을 기념하면서 덩샤오핑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를 시진핑으로 채운 것은 새로운 시대구분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국의 자신감은 중화제국의 부흥이 머지않았다는 자기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런 자신감에 외부 세계는 불편해 한다. 국제사회는 지난 40년간 중국의 개혁개방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 외부 세계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충실한 나라가 되고, 중국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돌아보면 국제사회가 기대한 대로 중국이 바뀐 측면도 있지만, 예측이 빗나간 부분도 적지 않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더 한층 공고해졌고, ‘도광양회’를 철회한 중국은 주변국가들과 심심찮게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분출되고 사회의 다원화,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경험 법칙도 지금 이 순간의 중국에는 적용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부쩍 ‘중국 방안(方案)’을 강조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나라마다 실정에 맞는 발전의 길이 따로 있다”고 여러 차례 발언했다. 말을 바꾸면 “날이 갈수록 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서구식 제도·체제 대신 우리는 우리 식으로 간다”는 얘기다. 시 주석의 연설에서는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서 실패한 20세기 사회주의와 달리,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성공 사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각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독자적인 차이니즈 스탠더드를 만들고 이를 관철시키려 한다. 이런 점들이 쌓이고 쌓여 바야흐로 중국과 세계와의 불화가 시작되고 있다. 무역전쟁의 원인도 그 불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핑퐁 외교로 관계 개선에 이른 중국은 개혁개방 선포 직후인 1979년 1월1일부로 미국과 국교를 맺었다. 지난 1일 두 나라는 무역전쟁의 포연 속에 수교 40주년을 맞았다.


개혁개방 40년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불혹의 연륜에 접어드는 큰 전환점이다. 그 전환점에서 중국은 무역전쟁, 나아가 세계와의 불화라는 시련에 맞닥뜨리고 있다. 중국이 이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며 2019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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