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폭식' 기성언론은 책임 없나

[언론 다시보기] 이자영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이자영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기숙사 룸메이트와 함께 학생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간다. “오늘 메뉴 함박스테이크네.” “선택은 했지만 좀 작지 않을까?” 다른 테이블을 둘러본다. 함박스테이크를 배식받은 학생들의 젓가락은 한식을 택한 친구의 식판을 기웃거린다. 아침을 먹지 않아 점심에 기대를 걸었던 우리 둘은 아쉬움을 안고 교실로 향한다. 방금 식사를 했는데, 여전히 배고프다. 이건 식사가 아니라 요기 수준이다.


학부 졸업하고 1년간 공백기를 보낼 때는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 소속감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날마다 공허함과 ‘가짜 배고픔’을 느끼며 자꾸 먹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야 가짜 배고픔이 사라졌다. 가짜 배고픔은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화난 사람을 묘사할 때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일리가 있다.


고대 그리스 테살리아의 왕 에리식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나무를 함부로 베어버린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굶주림의 여신 리모스한테 부탁해 에리식톤에게 허기를 불어넣게 한다. 걸신들린 에리식톤은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먹을 게 바닥나자 가족까지 모두 노예로 팔아서 음식을 사 먹는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자 자기 몸까지 먹어 치워 자기 이빨만 남게 된다. 그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때문에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다. 그가 생리적인 배고픔에 음식을 먹은 걸까?


생리적 배고픔은 에너지원이 부족한 때문이지만 ‘가짜 배고픔’은 심리에 기인한다. 외로울 때 많이 먹는 이유는 공허한 감정을 음식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때로는 가짜임을 알면서도 진짜로 여겨 받아들인다. 그것은 여전히 가짜지만 가짜는 진짜를 뛰어넘는다. 생리적 배고픔은 한동안 참을 수 있지만 심리적 배고픔은 참지 못한다. 가짜는 진짜로 채울 수 없을 때 우리 마음 속 무언가를 채워준다.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빠져드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정치적 음모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극우 유투버들이 양산하는 가짜뉴스를 철석같이 믿는다. JTBC의 태블릿PC 관련 기사가 조작됐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공론장을 파괴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게 된 데는 기성언론 책임도 크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이비 매체는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데 기성언론은 굼뜨다. 기성언론 중에는 가짜뉴스의 생산자인 동시에 전파자인 곳도 많다. 사이비 매체 못지않게 정파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널리즘의 위기와 관련해 기성 언론인들은 종종 뉴미디어의 출현 등 언론환경의 변화를 탓하는데 그것은 상당 부분 핑계다. 우리 언론의 진정한 위기는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는 건 어려운 과제이면서도 언론인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쉬운 과제다.


※ 우리 언론이 ‘예비언론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요?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번갈아가며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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