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러시아 '미디어 신경전'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영국과 러시아가 상대국의 공영방송이 불편부당의 보도 원칙을 어겼다며 미디어 규제기관을 앞세워 공공연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장 최근 사건은 지난 1월10일 러시아 미디어 규제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가 BBC에 대한 법적 조치를 밟겠다고 밝힌 것이다. 로스콤나드조르에 따르면 BBC는 러시아 지역에 뉴스를 제공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 리더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의 연설 장면을 여과 없이 공개했다. 러시아 측은 러시아 내 반극단주의 규제법에 저촉되는 위법 행위라며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IS는 불법단체로 규정돼 공식적으로 그에 대한 보도는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모든 언론매체는 IS의 지도자나 지지자들의 어떤 성명도 인용할 수 없다.


로스콤나드조르는 공식성명문에서 BBC 월드 뉴스(BBC World News) 뿐 아니라 러시아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BBC의 러시아어 웹사이트도 지난해 12월부터 조사해 왔다며 그 결과, “테러리스트 집단의 이데올로기적 원칙들을 전달하는 문건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이런 공개적인 움직임이 영국 미디어 규제기관 오프콤(Ofcom)이 러시아 국영방송 RT(공식명칭은 ‘러시안 국제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지난해 4월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를 보도하면서 저널리즘의 불편부당 원칙을 어겼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보복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4월부터 영국 정부는 러시아 측에 독살 시도 사건에 대한 빠른 해명을 요구하면서 현실적인 제재 방식들을 구상해 왔다. 그 한가지로 거론된 것이 오프콤의 규제 권력을 빌려 RT처럼 영국에서 영업하는 친 러시아 정부 매체들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는 방법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1년 넘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자 오프콤은 독살 시도 사건 전후인 3월부터 5월 사이에 RT가 보도한 시사 프로그램 10편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오프콤에 따르면 RT는 불편부당의 원칙을 어기고 러시아 정부에 편향된 정치 보도를 7번이나 한 것으로 밝혀졌다. RT에 대한 제재는 대규모 벌금에서부터 방송 면허 취소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에는 눈. 그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 정부는 영국 대표 공영방송인 BBC에 대한 조사를 벌여왔다. 러시아 정부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번 BBC에 대한 조사가 영국 정부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리아 자카로바 외무부 대변인 역시 오프콤을 통해 러시아 정부를 압박하는 영국 정부의 행동이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양국 정부의 신경전에 기자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27일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BBC 기자들의 신상이 사진과 함께 러시아 국수주의 그룹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 웹사이트 브이콘타크테(VKontakte)에 노출된 바 있다. 이후 러시아 우파 언론들이 BBC 기자들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 정보까지 공개하면서 모두 44명의 기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 대다수는 러시아 국적으로 러시아 정부 승인 하에 BBC 월드 서비스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언론은 러시아 정부가 배후에서 조종한 복수전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선데이 타임즈’(The Sunday Times)가 에딘버러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뉴스 웹사이트 스푸트니크(Sputnik) 기자 8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앙갚음’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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