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 심지어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 하지만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밥’이다. 돈이 없어서 혹은 시간에 쫓겨서 5000원짜리 백반 대신에 컵라면으로, 컵밥으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그마저도 거른다. 청년들은 이런 ‘흙수저’들의 밥을 자조적으로 ‘흙밥’이라 부른다.
혹자는 혀를 끌끌 차며 말할지 모른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몇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청년들이 포기한 밥 한 끼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젊은 시절 부실한 식사가 만성질환으로 이어지고, 이는 훗날 의료비 지출과 안정적인 소득 창출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변진경 시사IN 기자가 청년들의 식사권(食事權)을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주목한 이유다.
변 기자는 지난달 펴낸 ‘청년 흙밥 보고서’란 책에서 “가장 꿈 많아야 할 시기에 우리 청년들이 포기와 체념을 먼저 배우고 있고, 그 포기의 우선순위가 밥”이라며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 시작 또한 ‘밥’”이라고 했다.
변 기자는 책에서 식사, 주거, 생활, 노동 등 다양한 키워드로 청년의 곤궁한 삶을 담아내고, ‘서울중심주의’에 갇혀 소외된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청년수당이라는 대안까지 조심스레 제시한다. 변 기자는 ‘주거권’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지난 2008년부터 청년 문제를 취재해왔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시사IN 지면을 통해 보도된 기사를 보완해 엮은 것이다.
처음 흙밥을 취재하며 그는 종종 망설이고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특수한 일부 사례를 과장하는 것은 아닐까, 젊을 때 한 두 끼 굶는 게 대수로운 일일까, 반론을 들이밀며 자기검열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메모 앱에는 사례가 하나둘씩 쌓여갔다. 노량진에서, SNS에서 만난 청년들은 ‘남들 다 그런 거 아니냐’면서도 자신이 먹고 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거죠. 기사가 나간 뒤 댓글과 메일도 많이 받았어요. 도서실 가는 길에 보고 울었다, 옛날 생각나서 울었다 등. 제가 완전 기성세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제일 어려운 상황인 것 같고, 그래서 그들이 마음에 많이 꽂혀요.”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휴직 중인 변 기자는 “스스로 잘 먹고 남을 잘 먹이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2년 전 시사IN 기자들이 각자 관심 있는 주제로 독자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도 그가 내건 간판은 ‘밥은 먹고 다니니?’였다. 그에게 있어 밥은 사랑이자 자존이며, 그래서 ‘별 거’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밥을 차려 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엄청난 돌봄이고, 애정이고,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채워지는 자존감과 사랑을 무시할 수 없죠. 밥이란 건 별 거 아닌 게 아니라, 굉장히 별 거입니다.”
변 기자는 자신이 먹는 밥이 어떤 밥인지 스스로 알고, 타인의 밥에도 더 신경 써줄 것을 당부한다. “꼭 청년만이 아니라 아이, 노인,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 남의 밥상을 잘 들여다봤으면 해요.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군의 컵라면처럼 밥상에서 드러나는 건 아주 많아요. 개인의 밥상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의 문제가 녹아 있는 게 보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