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선악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신문방송학 박사.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미국 기관투자가들 사이에 불문율로 통했던 ‘월스트리트 룰(Wall Street rule)’이 시류에 맞춰 전향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룰은 투자대상 회사가 부적절한 경영을 하면 보유주식을 팔아치운다는 투자 방침이다. 이에 비해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 회사에 대한 주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지를 정한 자율규제 지침이다. 의결권 행사를 비롯해 주주제안, 이사후보 추천을 통한 이사회 참여, 주주 소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해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점에서 월스트리트 룰에 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자성에서 출발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금융회사 부실이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성과 주주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미국, 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 계기다. 이 중 미국은 2010년 ‘도드 프랭크 법안(Dodd-Frank Act)’로 불리는 금융개혁법을 탄생시켰다. 임원 보수나 이사선임 투표에 대한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해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을 키우는 기반을 마련했다. 반면 영국과 일본은 기관투자가가 대화를 통해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는 접근 방식을 택했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스튜어드십 코드, 그 자체는 죄가 없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으로 대통령 영향력 아래 있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구성을 봐도 정부 영향에서 자유롭기가 힘들다.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에 국민 노후자금이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은 ‘캘퍼스 효과’를 당위성의 근거로 든다. 미국 캘퍼스(CalPERS·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가 중점관리하는 기업 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익률(비교대상이 되는 기준수익률)에 비해 높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해당기업 주가가 개선된 이유가 단지 캘퍼스 때문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 무엇보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미국 ‘캘퍼스’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아전인수, 어불성설이다. 캘퍼스는 캘리포니아주의 공무원연금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한국 유력기업 297곳의 지분 5% 이상을 쥐고 있는 ‘자본시장의 공룡’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활용은 모든 정권에 선악과처럼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하지만 베어먹는 순간 원죄를 짊어지게 된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보다 시급한 건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 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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