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면 톱을 일단 2단 크기로 줄였음다.” 2013년 10월15일 조선일보 주필이 박수환 뉴스컴 대표에게 보낸 문자다. 언론사 주필이 홍보대행사 대표에게 보고하듯 이런 문자를 날렸고, 다음날 조선일보 지면에 그대로 반영됐다. 주필의 모범이 일부 간부들한테도 전염됐나보다. “기사 좀 내려주시옵소사”하자 “넵 걱정마세요”라며 답하고, “사장님 기사 클릭하심 됩니다”며 친히 링크까지 보내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에서 일어났다니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기사 청탁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준 데는 대가가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조선일보 일부 간부들에게 항공권과 숙박권, 명품 스카프 등 선물과 전별금 명목의 금품을 전달했고, 자녀의 대기업 인턴 채용에 관여했다. 뉴스타파가 2013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박 전 대표의 휴대전화에 저장됐던 문자를 토대로 1월말~2월초 보도한 내용의 일부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조선일보 일부 간부들을 일상적으로 관리하며 자신의 고객사에 유리한 기사를 싣고, 불리한 기사는 빼려고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박 전 대표가 자랑하는 언론사 인맥의 일부였으며, 영업활동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접대에 취하고 선물에 감읍했던지 기사 청탁 민원을 들어주고 칼럼 초안까지 받아가며 언론인의 자존심을 팔아버렸다.
윗선의 일탈 행위는 현장기자들을 힘 팔리게 한다. 하루하루 쫓기면서도 힘들게 취재한 기사가 거래에 이용됐다는 의혹은 모욕감을 안긴다. 그 대가가 골프접대와 선물 나부랭이였다니 분노보다 서글픔이 앞선다. 일말의 반성을 기대했건만 의혹의 당사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발뺌하고 있다. “박 대표가 언론인들과 인맥을 통해서 기업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조선일보의 선배들이 박 대표의 기사 민원을 들어줬다는 것이 같은 기자로서 부끄럽습니다.” 조선일보 한 기자의 말이다. 부끄러움은 왜 일선기자의 몫인가.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으로부터 금전이나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을 받지 않는다. 취재원 또는 업무 유관단체나 보도 대상에게 대가성 청탁이나 민원을 하지 않으며 또한 이들로부터 청탁이나 민원을 받지도 않는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이지만 언론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언론윤리 원칙들이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일부 간부들이 연루된 의혹에 유감을 표하고 엄정한 조사와 함께 징계위원회 개최를 사측에 요구했다. 사측은 윤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향응과 접대 문화는 언론계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기업과 유착해 기사를 거래하는 행위는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광고·협찬에서 대기업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이런 부적절한 모습이 조선일보뿐 아니라 대다수 언론사 뉴스룸에 파고들고 있다. 제목이 바뀌더니 지면과 온라인에서 사라지는 기사는 많아졌고, 홍보성 기사는 사방에서 내려온다. 윗선에 부담이 되는 기사는 ‘킬’된다.
2017년 8월 ‘장충기 문자’가 터졌을 때 우리는 참담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녀나 자신의 취업을 청탁하는 모습, 기사로 보은하겠다며 다짐하고 삼성 직원이라도 되는 양 삼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렬히 반성하며 기자윤리를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난 ‘박수환 문자’는 언론계의 병폐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었고, 특정 언론사 문제라며 모른척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