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발언과 대미 외교 역량 강화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지난 12일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 의장이 한국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회의적 발언을 제기해 충격을 안겨줬다. 발언 요지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2차 정상회담에서도 성과가 없을 것이고,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 무장 해제를 원한다는 믿음이다. 펠로시 의장의 인식과 전망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 와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펠로시 발언이 나온 배경을 보면, 미국의 전통 엘리트 인식을 그대로 표출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북한이 악질 불량국가로, 절대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과의 대화는 속임수를 당하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다. 둘째, 미국 엘리트의 북한 인식은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북한 인식과 같다. 한미 동맹의 특성상 미국은 북한 관련 정보와 판단의 상당 부분을 한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의 전통 엘리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고, 북한 문제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된다.


배경 분석에 따르면, 북한 문제가 미국 국내 정치의 쟁점이 되는 상황을 회피해야 하고, 북한 문제와 관련해 강경 일변도로 형성된 미국 엘리트의 부정적 인식에서 균형감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과제가 된다. 그러나 두 가지 과제는 모두 극도로 민감한 문제로 기존 외교부 인력과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결국 대미 외교 역량을 총체적으로 강화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미 외교 역량 강화는 세 가지 분야에서 진행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양자 외교 차원으로 미국 담당 외교관 인력과 예산을 획기적으로 증강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 외교를 전면적으로 강화한다. 정치인과 경제인, 학자, 언론인을 미국 여론 주도층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다방면으로 추진한다. 셋째, 외교 전략 연구, 수립 기능을 혁명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전통적 외교는 물론 공공 외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설명 논리와 설득 논리를 질적, 양적 차원에서 풍부하고, 체계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외교관들이 충분히 특혜를 누리고 있고, 외교관의 무능이나 나태를 국가가 보전해줄 필요가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외교 인력과 예산은 과거 198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터무니없이 열악한 수준이다. 지금은 2019년이고,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미 외교에서 절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특혜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펠로시 발언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대미 외교 역량 강화는 필수다. 반대로 대미 역량 강화를 외면하면, 제2의 펠로시 발언은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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