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중국’이란 문구가 나타난다. 세로선 네 개가 각 글자 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양분한다. 음절 좌측 절반은 세리프로, 우측은 산 세리프 서체로 쓰였다. 양쪽은 교차하지만 어떻게 해도 우리 생각처럼 말끔하게 붙진 않는다. 절반씩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중국 출신 이주민이 모이는 ‘서울 대림동’을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은 이 이질감과 다르지 않다.
김동인 기자는 시사IN 신년기획 ‘대림동 프로젝트’ 웹페이지 첫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묘한 어긋남의 현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연말 한 달을 대림동 고시원에서 살며 몸으로 기록한 결과다. 지난 15일 시사IN 사옥에서 만난 그는 “거창한 얘기나 ‘이 사람들 그렇지 않아’가 아니라 도시가 주인공인 스토리를 전개해보고 싶었다. 한 도시 독특한 구역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다층적으로 대림동을 보고 그대로 전하려 했다”고 말했다.
대림동은 시사IN 594호에 실린 커버스토리 제목처럼 “우리가 몰랐던 세계”다. 인상은 있지만 재한 조선족 등이 모인 현재가 제대로 조명된 적은 없었다. 김 기자만 해도 뜻밖의 “총을 맞은 기획(의도치 않은 오더)”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팀장 선배가 어디서 ‘서울에 내국인 인구가 계속 순감소하는 지역이 있다’는 얘길 듣고 왔어요. ‘가서 한 달 살면서 너가 이걸 보는 거야. 재밌지 않겠니?’라길래 ‘농담도 잘하셔’ ‘하하호호’하다 발제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이게 뭐지’하다 간 거예요.”
그가 머문 대림2동 대림중앙시장 인근 고시원은 대림1?2?3동 중 가장 낙후됐고,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대림동’ 한가운데다. 중국계 조선족 뉴스마다 ‘그 동네서 살아보고 얘기하라’는 댓글이 달리니 ‘그럼 살아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담배 쩐내도 심했다. 넣으면 못 먹겠고, 빼면 맛이 밍밍해지는 고수 때문에 삼시세끼가 힘들었다. 밤이 되면 ‘30분만 버스 타면 집 가서 편히 잘 텐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프랜차이즈가 없는 동네라 일할 수 있는 ‘카페 찾기’도 난관이었다.
“(그래도)집을 구했더니 취재원 설득하기가 좋았어요. 본인들을 한국에서 어떻게 보는지 잘 알고 경계심이 큰 분들이에요. 살고 있다 그러면 라포 형성하기가 좋고, 2~3번 방문했을 땐 누그러지시더라고요. 한두 명씩 한 시간 이상 인터뷰는 매일 했고, 촬영을 허락한 다섯 분을 기사에 냈어요. 1~2주차엔 뚫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3~4주차엔 만날 사람이 많아 쫓겼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한 달 살기’ 외 매체적인 시도로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프로젝트 웹페이지가 오픈한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페이지뷰는 약 8만1000회로, 상당 독자가 2만3000자 분량(지면 3만6000자)의 온라인 기사를 한 번에 읽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기구독을 당부한 김 기자의 트윗 타래만 총 1700여회 리트윗 됐을 정도다. 기술 인력이 한정적인 중소매체 사정상 반응형 요소보다는 전달 형식별 기사, 웹페이지, 영상, 사진, 글, 인포그래픽 콘텐츠의 재조립과 배치에 집중했고 전략은 유효했다. 사전준비 1주, 체류 4주, 웹페이지와 영상 제작 3주 등 총 8주간 기자 하나를 온전히 투입한 만큼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기도 했다.
머문 것은 김 기자이지만 회사 안팎의 전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기사는 만난 사람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과 인프라, 국가 정책이 맞물리는 거대한 장소의 생동하는 ‘현재’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포그래픽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막내 기자가 사흘을 고생하고, 온라인과 영상 작업에 참여한 외부 인력도 내 일처럼 함께 했다. 특히 신선영 시사IN 사진기자는 기획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한 공동작업자라 해도 무방하다. 중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감독들의 영화 속 장면 같은 사진들은 신 기자의 작품이다. 웹페이지 이미지의 흐름도 대부분 신 기자가 ‘셀렉트’한 결과다.
‘작은중국’의 반은 이질적이지만 나머지 반은 동질적이다. 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그들을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소화해 낼지는 이제 막 조명된 과제다. IT회사를 관두고 세계일주를 마친 후 2013년 시사IN에 입사한 6년차 기자는 이번 취재의 개인적 의미를 밝혔다. “과테말라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치킨버스를 타고 4시간 걸려 수도 한국 상점에 가던 때가 생각났어요.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삶이랄까. 지금 이주민 4세대 젊은 친구들이 그래요. ‘엄마아빠처럼 살겠다’가 아니라 ‘어디서 살진 내가 결정한다’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런 경계의 삶, 주제들을 계속 봐야겠다 싶었어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시사IN '대림동 프로젝트' 웹페이지 바로가기 http://daerim.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