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이가 뉴욕타임스 최상훈 서울특파원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이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유행시킨 표현을 빌자면 ‘검은 머리 외신기자’다. 최상훈 기자는 심지어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소위 ‘순수 토종’ 한국인이다. 그런 그가 서울에서 송고하는 기사는 뉴욕타임스 내에서도 권위를 인정 받는다. 최 기자의 연수 기간 중 대신 서울에 부임했던 ‘금발’ 외신기자는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한국어와 영어 모두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 역사 및 사회에 대한 지식까지 풍부한 상훈 이상의 기사를 쓰는 건 솔직히 무리다.” 대한민국 제1여당의 대변인은 ‘검은 머리 외신기자’를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정작 글로벌 스탠다드에선 그렇지 않다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검은 머리 외신기자’라는 표현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타고난 모발의 색을 특정하는 것은 인종 차별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한국이 아무리 단일민족으로서의 유구한 역사에 긍지를 갖고 있다지만 21세기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화 중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태생적 인종적 특수성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며 서로를 상처 주는 후진적 행태만이 만연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도 이해식 대변인의 ‘검은 머리’ 발언은 유감이다. 이 대변인은 지난 19일 해당 논평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일부 철회하며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한 것”이라며 “인종적인 편견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네티즌들의 용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을 했다면 그것은 더욱 큰 문제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문제가 뭔지를 안다면 고치려는 노력이라도 기대해볼 수 있는데, 문제가 뭔지를 모른다면 희망 자체가 없어 보인다.
이해식 대변인의 논평 이후,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기자의 이름과 소속 언론사 이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글이 바로 뜬다. “이OO 기자 사진 얼굴은 공개인데 나이 학력 대학교 고향 결혼 남편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네요.” 본인뿐 아니라 가족 및 지인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꿈틀거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뜩하다.
이해식 대변인의 논평은 태평양 건너 미국의 민주당에서도 문제를 삼았다고 한다. 미 의회 관계자들은 해당 논평에 대해 “인종 차별적이다”라며 “왜 그런 발언을 지금 했느냐”고 한국 측 인사들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선 관련 발언은 금기이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도 국무부가 19일(현지시간) 해당 기사에 대해 “자유로운 언론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좀 더 관대한 사회를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는 입장을 냈다. 이례적이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과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들의 모임인 AAJA(Asian-American Journalist Association)도 블룸버그 통신과 해당 기자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굳게 믿는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용에 동조하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싸울 준비가 전 세계 모든 언론인들에게 있음을. 21세기하고도 19년이 흐른 지금, 18세기 볼테르의 다음 말을 인용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서 싸우겠다.” 2019년 3월, 대한민국의 여당이 곱씹어야 할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