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혼밥과 식사 소통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부장. 식구(食口)는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다. 친구를 뜻하는 companion의 라틴어 어원도 ‘빵(pan)을 함께(com) 먹는 사람’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단순한 식사(食事) 행위를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 철학과 미학, 미디어 이론의 선구자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은 “음식은 나누고 함께 할 때 비로소 음식다워지고, 먹는다는 건 공동생활 속에서만 정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공적 소통’의 핵심 장으로 식탁의 중요성을 설파한 대목이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사회는 ‘함께 먹는 것’에 공동체의 결속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식사 그 자체가 세대 간 교육과 소통의 핵심 통로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사조를 통해 개별성을 인정하고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개인주의 문화를 만들어낸 서구와는 다소 다른 행보였다.


이런 전통을 감안할 때 최근 혼밥(혼자 밥먹기)의 유행은 단순히 식사나 외식 문화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내포하는 신조류다. 혼밥 행위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떠오르고, 혼밥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혼밥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출현했다. 저출산과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은 혼밥의 인구학적 배경이다. SNS 시대가 낳은 ‘가족의 불통’이란 역설도 하나의 사회적 원인으로 꼽힌다. 심리적 기제도 깔려 있다. 혼밥은 관계 피로감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의 발로로도 해석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결과라는 풀이다.


혼밥 문화를 바라보는 우려섞인 시각도 있다. 혼밥이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나 고립, 소외 등 외내면의 함축성을 담고 있어서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빈도가 높은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정감이 더 높고 우울증, 약물사용 등 문제 행동을 일으킬 확률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혼밥이 비만 유병률을 높인다는 지적도 있다. 세끼를 혼자 식사하는 사람의 비만 유병률이 세끼를 함께 식사하는 이들보다 현저히 높다는 것이다.


최근 혼밥은 정치권 이슈로도 떠올랐다. 자유한국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개 식사 일정이 600일 중 100회에 불과하다고 밝히면서다. 청와대는 “정치적 주장을 위한 사실 왜곡과 자의적 해석“이라고 일축했다. “사실 왜곡에 기초해 국가원수의 일정까지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정치적 상식과 도의에도 맞지 않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식사는 그 자체가 정치 행위다. 누구와 밥을 먹느냐는 물론 메뉴가 무엇인가까지 언론의 관심을 받는 이유다. 역대 대통령들은 ‘식사 정치’를 통해 국정 운영의 메시지를 알렸다. YS의 칼국수나, DJ의 홍어 메뉴가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들어 경제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늘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식사 소통’을 통해 침체돼 있는 경제와 산업계에 활력의 메시지를 전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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