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누구의 것인가?’ 지난 수십 년간 방송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뿐 아니라 민영방송의 기자, PD들도 같은 물음을 던져왔다. 지배구조가 어떠하든, 지분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방송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오랜 논쟁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방송에 대한 사적 지배는 무수한 의혹을 낳는다. SBS의 경우를 보자. 지난 2009년 윤세영 당시 태영그룹 회장은 4대강 비판 보도를 하던 박수택 환경전문기자를 논설위원실로 전보 처리했다. 윤 회장은 앞서 박 기자를 회장실로 불러 40여 분 간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태영그룹이 SBS를 로비에 활용하려 했던 정황도 있다. 태영그룹이 인제 스피디움 관련 예산을 따내는 과정에 SBS 전직 사장과 간부가 정관계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 광명역 역세권 개발 사업을 위해 SBS가 광명시의 숙원사업을 대신 해결해줬다는 의혹 등이다. 이 같은 의혹에 윤세영 전 회장은 2017년 9월 “돌이켜보면 공정방송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사과드린다”며 SBS 경영과 방송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윤 전 회장은 SBS 회장과 SBS 미디어홀딩스 의장직을 사임했고 윤 전 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회장도 SBS 콘텐츠허브, SBS 플러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SBS가 이룬 변화는 충분히 의미 있다. 국내 방송사 최초로 보도, 편성, 시사교양 최고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실시했고, 수직계열화 합의로 수익 유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이사회가 의결한 조직개편은 SBS의 소유·경영 분리 시계를 1년 6개월 이전으로 돌려놓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윤석민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동희 경영본부장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SBS 방송 독립의 산파 역할을 했던 최상재 전략기획실장을 보직해임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아버지인 윤세영 전 태영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윤석민 회장이 SBS 장악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는 이를 윤석민 회장의 SBS 사유화 시도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해묵은 갈등이 다시 시작되는 이때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은 누구의 것인가?
기술적으로 유한한 전파를 공익을 위해 방송사업자에게 수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영방송이라 해도 방송의 공적책무를 완전히 면제할 수 없다. 때문에 민영방송사의 영리추구를 일반 기업의 그것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SBS의 기자와 PD들은 공공재인 지상파방송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대주주의 전횡에 맞서 지난한 싸움을 벌였고 결국 대주주의 경영일선 퇴진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SBS뉴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SBS가 첫 방송을 시작했던 1991년과 지금의 미디어 시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했다. 케이블 방송, 종편의 등장으로 격화된 경쟁이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성장으로 국제전으로 번졌다. SBS는 스스로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제살 깎아 먹듯 방송을 사유화 하며 전횡을 저지르던 대주주가 다시 돌아와 미디어 빅뱅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건설자본에 휘둘리는 뉴스가, 드라마가, 오락프로그램이 미디어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윤석민 회장은 아버지가 약속한 소유·경영 분리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SBS의 경쟁력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