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이 뿌리 깊게 똬리를 틀었다. 학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이 “서울로!”를 외친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 절반이 지역에 살지만, 정작 지역을 홀대한다. 서울이 아니면 변방으로 치부한다. 봉건시대처럼 신분세습 하듯 편을 가르고, 공고한 ‘서울 캐슬’을 지키기 위해 성곽을 더 높이 올린다. 그 벽이 너무 높아 이젠 사다리로 감히 넘볼 수 없다. 네이버까지 그 성곽의 수호자가 된 지금, 더 이상 참지 못한 이들이 신문고를 울리고 있다.
네이버가 뉴스서비스를 개편하며 모바일 뉴스 편집을 언론사에 맡겼는데, 44개 언론만 포함해 불을 붙였다. 종합지 10곳, 인터넷·IT지 11곳, 방송·통신사 14곳, 경제지 9곳, 모두 서울에 소재한 언론뿐이다. 모바일 콘텐츠 제휴를 맺은 지역언론사는 한 곳도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지만 언론의 생존이 위협받는 오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평등한 공론장’을 요구하며 성명을 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공염불로 돌아왔다. 당시 지역언론이 낸 성명은 절박했다. “지역언론의 위축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에 위험이다” “독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뉴스를 구독할 수 있도록 뉴스 선택권을 돌려 달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웹의 정신을 다시 돌아보라는 간절한 목소리였다.
지역언론이 홀대받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 있어왔다. 지난해 ‘포털-지역언론 상생법’으로 불린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의 기사를 일정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실어 지역뉴스에 대한 독자 접근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갈수록 모바일 뉴스 소비가 늘어나는 미디어 시장에서 지역뉴스를 ‘배제가 아닌 배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서울에 편중된 언론 지형의 왜곡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으려면 시장의 자율성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접근은 미국의 소수자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과 다름없다. 취지가 점점 퇴색하고 있지만 이 정책의 바탕에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하고 있다.
돌아보면 지역뉴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단지 편중돼 있을 뿐이다. 축제 소개나 강력 범죄, 화재 등 독자들이 접하는 지역뉴스는 특정 부분만 부각돼 숲이 아닌 나무만 보여줬다. 때론 지역의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져 고정관념이 됐다. 지역의 이슈나 사람들의 삶이 흥밋거리로 치부되기도 했다. 언론은 뉴스를 쫓는다는 말이 정언명제라면, 지금의 뉴스는 지역을 철저히 소외시키며 뉴스를 내쫓는 형국이다.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요즘이다. 수도권은 무한 팽창하는 데 반해 지역은 저출산과 인구 유출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고 수도권을 제외하면 거의 전국적 현상이다. 비상상황엔 비상한 처방이 필요하다. 지역언론이 생산한 뉴스를 모바일로 볼 수 있게 자리를 달라는 것은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한 지역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자는 호소다. 물론 일각의 우려를 알고 있다. 물꼬를 터주면 지역의 토호세력과 결탁해 뉴스를 혼탁하게 만든 사이비 언론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라고 한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못 담글 이유는 없다. 자정 장치를 두고 어기면 퇴출하면 된다. 네이버에 촉구한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와 머리를 맞대 지역언론을 위한 모바일 정책을 조속히 세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