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목매는 선정 보도' 악순환 끊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설령 그렇다 해도 무슨 상관인데?’


지난 8일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방송인 하일(로버트 할리)씨에게 동성애 의혹까지 제기됐다고 밝힌 기사를 향해 한 누리꾼이 적은 댓글이다. 기사에 달린 1117개의 댓글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공감을 받았는데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도 ‘마약한 것만 다뤄야지, 저런 개인 사생활까지 까발려져야 하나…’라는 한마디였다.


그러니깐 ‘범죄 사실과 관계없는 개인의 사생활은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굳이 언론 윤리까지 들먹일 일도 없다. 특히 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범죄 행위와 같은 선상에서 취급한 이번 보도는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강제로 밝히는 일)’ 등의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저열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기사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이 ‘이런 기사 쓰지 말라’, ‘궁금하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국민의 알 권리’도 명분이 약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는 이뤄졌다. 심지어 9일 밤 하 씨의 동성애 의혹을 최초 보도한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의 기사가 삭제된 후에도 대부분 언론사들이 관련 보도를 확대·재생산했다. 언론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도 아는 ‘사생활 침해’에 관한 상식을 기자들이 몰라서 감행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결국 대다수 언론사들은 ‘조회 수 올리기’라는 명백한 의도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유명인’과 ‘동성애’, ‘마약’, ‘몰몬교’라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조합한 셈이다.


최초 보도까지는 그래도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실제 언론계에서 먼저 문제 있는 보도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후속 보도는 다르다. ‘조회 수 올리기’라는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작성된 기사는 실제로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예컨대 아시아경제가 뉴시스의 보도를 인용해 10일 오전 송출한 <남성 마약사범, “로버트 할리와 연인관계, 함께 마약했다”>는 제목의 기사는 이날 전 매체를 통틀어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기록됐다. 네이버에서만 무려 50만 회 가까이 조회됐고 4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역시 뉴시스의 보도를 인용한 중앙일보의 <“로버트 할리와 연인관계” 주장男 “마약 함께 투약” 진술> 기사와 조선일보의 <로버트할리, 과거 ‘동성연인 주장’ 진술에 마약 혐의 조사 받아> 기사도 각각 네이버에서만 16만 9000여 차례, 14만 6000여 차례 읽혀 이날 네이버 ‘많이 본 뉴스’ 랭킹의 23위, 26위를 차지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기자들은 과연 웃었을까, 울었을까.


포털이 뉴스의 가장 중요한 유통 경로로 자리 잡고, 기사 조회 수가 광고 수익과 직결되는 언론사의 수익 구조상 자극적인 주제를 서로 좇고 좇는 경쟁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기자 입장에서도 하루에도 수십 만 건의 기사가 포털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눈에 띄고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오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유혹이 점점 커진다. 상황은 계속 나빠질 테지만 그럼에도 결국 기본을 지키자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조회 수를 위해 쏟아내는 선정적 보도의 유혹을 우리가 먼저 뿌리치자는 것이다. 보도에 앞서 사실 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비윤리적·자극적·선정적 보도를 지양하며 우리가 다루는 이야기가 결국 살아 숨 쉬는 인간에 관한 것임을 잊지 말자. 기본을 잊는 순간 지금 같은 보도 참사는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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