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엄마 선수'는 왜 없을까

[스페셜리스트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황제는 다둥이 아빠가 되고서도 오랫동안 재위한다. 제83회 마스터스 골프대회 우승컵은 어느덧 마흔 넷이 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차지했다. 남매를 둔 아버지인 그는 14년 만에 다섯 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해내며 통산 메이저 우승을 15회로 늘렸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도 최근 마이애미 오픈 우승컵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우승을 101회로 늘렸다. 역대 최다인 지미 코너스(미국·109회)의 기록을 맹추격한다. 서른여덟 페더러는 딸 쌍둥이와 아들 쌍둥이를 데리고 투어를 함께 다닌다. “아이들이 투어를 힘들어할 때 은퇴를 고려해 보겠다”고 말하는 아빠 선수다.


여제는 상황이 다르다. 페더러와 동갑내기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2년 전 가을 첫 딸을 낳고 죽을 고비에서 헤맸다. 그랜드슬램 단식 23회 우승에 올림픽 금메달 4개를 딴 철녀가 제왕절개 분만 후 폐동맥이 막히는 증상에 시달리며 6주간 꼼짝없이 침대에만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경기장을 떠나있던 사이 세계랭킹이 1위에서 491위로 곤두박질쳐 시드 배정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여자프로테니스(WTA)가 출산 공백을 부상 공백과 똑같이 다뤄 랭킹 포인트가 싹 없어졌다. 전 세계 1위 빅토리아 아자렌카(30·벨로루시)도 아들을 낳는 사이 랭킹이 978위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여자 선수의 출산 공백을 랭킹에 어떻게 반영해야할지 논란이 뜨겁지만 뚜렷한 개선책은 아직 없다. 신예 선수들은 “대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애 낳았다고 랭킹이 유지되는 것은 특혜”라고 반발한다. 윌리엄스는 작년 봄 복귀한 후 우승이 없다. 호흡 곤란과 무릎 부상으로 최근 두 대회 연속 기권할 정도로 몸이 예전같지 않다.


‘워킹맘’. 스포츠계에선 아직도 어색한 수식어다. 지난달 27일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흥국생명이 한국도로공사를 꺾고 여자 프로배구 챔피언에 등극하자 응원석에 있던 아이들이 코트로 뛰어갔다. 아이와 기념사진 찍는 선수들이 다 엄마인줄 알고 “요새는 엄마 선수들이 많네요”라고 한마디 했다가 머쓱해졌다. 세상에, 아이 볼에 연신 뽀뽀하며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이 선수들이 죄다 ‘조카 바보’ 이모였다. 진짜 엄마는 양 팀의 센터 둘 뿐이었다. 1981년생인 ‘경원이 엄마’ 김세영과 ‘보민이 엄마’ 정대영. 합계출산율이 0.98명까지 내려간 초(超)저출산 한국 사회의 단면이 배구장까지 적나라했다.


정규직 개념 없이 일하는 프로 선수들에게 엄마 되기는 버거운 선택지다. 실력이 떨어지면 계약이 끝나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출퇴근이랄게 없이 전국을 누비며 경기한다. 이런 선수들이 맘 놓고 아이를 여럿 낳을 수 있어야 한국이 저출산 숙제를 해결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여제들이 엄마가 되어서도 더 많은 성취를 하고, 그 기쁨을 아이들과 함께 몇 배로 더 누릴 수 있기를. 황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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