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과 네르친스크 사이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1689년 청나라는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었다. 17세기 들어 중국 북쪽 변경인 헤이룽장(黑龍江) 인근까지 진출한 러시아와의 분쟁 끝에 체결한 조약이다. 중국이 서구 국가와 맺은 첫 근대적 조약이자 평등 조약으로 기록됐다. 청은 남진하는 러시아를 막아 세웠다고 선전했고, 러시아는 청과의 교역 재개라는 반대급부를 얻었다. 19세기 중반인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은 영국과 난징 조약을 체결했다. 많은 이들이 중국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라고 평가한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중국 침략에 나서는 계기가 됐고, 중국인들은 5000년이 넘는 긴 역사 속에서 가장 굴욕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다시 두 세기가 흐른 현재 중국은 또 한 번 중요한 역사의 기로에 섰다. 미국의 도발로 시작된 무역전쟁의 향방을 가를 협상이 종착점으로 향하고 있다. 아편전쟁과 마찬가지로 미·중 무역전쟁도 양국 간 무역수지 불균형과 시장 개방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발생했다. 무역전쟁을 ‘제2의 아편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한 이유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볼 만한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문제는 합의 내용이다. 미·중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한 사안들은 마치 아편전쟁의 결과물인 난징 조약을 연상케 한다. 예컨대 광저우·샤먼 등 5항 개항은 중국 시장의 추가 개방으로, 행상(行商) 등 독점상인 폐지는 국유기업 개혁 및 국가 보조금 축소로 표현만 달라진 정도다.


필자는 무역전쟁을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그렇다. 지난해부터 2년 가까이 이어진 무역전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세를 가하고 중국은 방어에 몰두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진정한 패권 경쟁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을 넘어서는 2050년대 이후나 돼야 시작될 것이다.


중국도 아직은 힘이 모자라는 것을 인정한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지도부나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는 무역전쟁 발발 후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충실히 하자”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 왔다. 미국의 공세를 차단하거나 역공을 가할 뾰족한 수가 없는 만큼 체제 결속을 다지며 버텨 보자는 얘기다. 어떻게든 미국을 달래 합의를 이끌어 내고 갈등을 봉합 내지 완화하는 것이 지상 과제다. 양보 가능한 마지노선도 무역전쟁 발발 초기보다 훨씬 뒤로 물린 모습이다. 금융시장 개방이나 환율 방어 문제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데 동의한 것이 그 방증이다.


아름답게 지는 법을 강구 중인 중국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대등하고 호혜적인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다. 서구 언론에서 중국에 불리한 불평등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전망을 내놓을 때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중국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유가 경제적 불이익을 우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20세기 초반 영국이 패권국가 지위를 미국에 넘겨줄 때나 1985년 미국이 엔화 절상을 강요하며 일본을 무릎 꿇린 ‘플라자 합의’와 달리 미·중 무역전쟁은 체제 경쟁의 성격이 짙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로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상당하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016년부터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노선·이론·제도·문화를 지칭하는 ‘4개의 자신감(四個自信)’을 줄곧 강조하며 서구와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에 굴종한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면 시진핑 주석은 물론 공산당의 집권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푸젠성 성장을 지내던 2001년 책임 편집을 맡았던 서적의 서문에서 “아편전쟁 이후 부패한 청 왕조는 제국주의 열강과 난징 조약 등 불평등 협약을 맺으며 국권을 잃고 치욕을 당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청 왕조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러시아를 상대로 체면치레를 했던 네르친스크 조약과 굴욕적이었던 난징 조약 사이의 어디쯤이 될 미·중 합의의 수준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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