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태도 보인 조현병 환자 보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이른 새벽 불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30분도 지나지 않는 사이에 초등학생, 시각장애인, 70대 노인을 비롯한 주민 5명이 희생됐다. 지난달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40대 남성 안모씨의 방화ㆍ살인사건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희생자 5명 중 4명이 여성이었고, 치안 관리가 허술한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비극성은 더했다.


사건 직후 안씨가 조현병 환자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언론은 그가 왜 이렇게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전국 39만명으로 추정되는 중증정신질환자, 25만명으로 추정되는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했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대부분 언론 보도가 피의자 안씨 개인을 악마화하거나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등치시키는 안이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당일 보도에서 언론들은 대체로 안씨가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조현병은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폭력 등 이상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조선일보 4월18일자)고 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이다.


중증정신질환자들을 무조건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재산문제 등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억지로 입원시키는 등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정신질환자들의 인신이 구속되는 일을 막기 위해, 2017년 5월부터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개정된 정신건강보호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주요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증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의 문턱을 낮추고 싶어하는 일부 의료계 등의 움직임에 거리를 두고 있다. 환자 인권과 사회 안전이라는 대립적인 가치 사이에서 환자 인권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회로 나와 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고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정신질환자 관리의 핵심 인프라를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센터)로 지목하면서, 정신센터에서 안씨 사례와 비슷한 환자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을 경쟁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안씨가 관리를 받아야 할 진주 정신센터는 370명의 정신질환자를 관리해야 하지만 직원은 10명이고, 3명만 정규직이라는 사실, 기존 직원 중 2명은 일을 맡은 지 1년도 안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보도(중앙일보 4월23일자)는 사건의 근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언론의 성숙도는 지난해 말 자신이 치료하던 조울증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유지를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족들은 당시 “의료진의 안전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며 고인의 뜻을 전했는데,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언론의 태도는 그의 죽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우리 언론은 과거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낙인찍기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뜻밖의 참변을 당한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정신질환자인 범인의 치료권을 외면하지 않은 이번 사건처럼 앞으로도 성숙한 태도를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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